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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에게 <슈퍼 사이즈 미>는 그야말로 공포
2004-10-11

<슈퍼 사이즈 미> Super Size Me 대영3, 미국, 2003, 감독 모건 스펄록

추석을 쇠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내 덩치에도 당장 들기 버거울만큼 무겁고 거대한 반찬 보따리를 만들어 내놓으신다. 한 눈에 보기에도 형수님께 돌아간 몫의 두 배는 족히 된다. 민망하다. "도통 너는 밥을 안 해 먹잖니…." 이미 충분히 과체중인 아들놈이, 당신에겐 늘 못 먹어 퀭해뵌다신다. 그건 모두 집밥을 먹지 못해서라 말씀하신다. 사실 나는 밥을 '못' 해먹는다.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부엌 출입을 봉쇄당한 '아들'이었다. 이런 '아들'들 - 대학에 들어가서야 겨우 라면물을 맞추게 된 정도의, 하지만 여전히 '대충'밖에는 못 맞추는 - 에게 있어 요리라는 것은 자연스레 손에 붙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러니 어서 결혼을 해야지". 이번에도 어머니의 아들놈 밥걱정은 결국 결혼 채근으로 끝났다. 어쨌건 맞는 말이기는 하다. 안정적으로 밥을 제공받는 시스템 중에서 결혼을 대체할만한 것도 없긴 없다. - 여기에서 '누가 밥을 하느냐'의 논쟁은, 거절하겠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나는 채찍질을 당하면서라도 아내에게 밥을 배울 용의가 충분한 사람이다. 하지만 다른 계기를 아직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끼니 해결을 위해 결혼을 결심할만큼 나는 비겁하거나 단순하지 못하다.

나는 밥을 사먹는다. 집에서 나와 산지 햇수로 5년. 그 기간동안 나는 대부분의 끼니를 사먹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도 꾸준히 전부를 사먹게될 것이다.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대부분이 인스턴트 정크 푸드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미 나는 몸소 '슈퍼 사이징 마이셀프'를 해온 셈이다. 이렇게 먹고 사는 사람에게 <슈퍼 사이즈 미> 같은 영화는 그야말로 공포다.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폐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해서 금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이 영화가 나의 식단을 바꾸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공포를 기반으로한 교훈은 공포로만 남을뿐, 쉽사리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하여, 나는 이 화제작을, 보지 않을 것이다. 아직 맛있게 먹고 있는 나의 일상적 식단, 내 사랑스런 정크푸드에 공포를 양념으로 얹어 먹을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정크푸드 마니아들이여, 오늘만큼은 극장 말고 맥도날드에서 만납시다. 무서워말고, 당당하게 빅맥으로 배 불리자구요.(특히: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시면 정말이지 큰일난다. 난 그 날로 장가가야한다.)

이해영(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