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9회(2004) > 오늘의 추천영화
<이조> Izo
2004-10-11

일본, 2004, 감독 미이케 다카시, 오전 11시, 부산1

이조 오카다는 살인자로 명성을 얻은 하층계급 출신 사무라이였다. <이조>는 바로 그 이조인 듯한 무사의 죽음에서 시작되지만, 이내 시간과 공간에 상관하지 않는 기묘한 이야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암살자 이조는 오랫동안 고문을 받다가 처형당한다. 원한을 품은 그의 영혼은 지옥에도 가지 못하고 무한한 세월을 떠돌면서 살인을 계속한다. 신선조의 무사들, 그의 어머니, 불교의 고승, 위원회의 원로들. 수없는 죽음으로도 보상을 받지 못한 이조는 오직 복수만을 원하면서 옛주군을 향해 달려가고, 그앞에 몇번의 생을 함께 겪은 연인이 나타나 이상한 예언을 들려준다.

미이케 다카시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이조>는 줄거리를 풀어놓는다는게 부질없는 짓처럼 느껴지는 영화다. <이조>는 미이케 다카시의 전작인 <극도공포대극장 우두>처럼 맞물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들을 헤치면서 올바른 길이 존재하지 않는 미로를 방황한다.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아득한 통로로 떨어지고, 뱀파이어를 만나고, 근세에서 현대로 도약한다. 그리고 도대체 시나리오가 있었을까 싶은 물결 사이로 일본 현대를 관통하는 전쟁과 폭력의 흑백 뉴스릴이 뛰어든다. 내레이터라고 믿고 싶지만 의미파악 안 되는 노래를 부르는 음치남자까지. 비트 다케시와 오가타 켄, 마츠다 류헤이 등 낯익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잠깐씩 등장하는 <이조>는 천조각쯤은 되는 직소퍼즐처럼 혼란스러우면서도, 핏물과 칼날로 정신없는 와중에, 비정하고 무의미한 세상은 변치 않으리라는 비관을 뚜렷이 새기고 떠나가는 영화다.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