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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입맞춤> Ae Fond Kiss
2004-10-10

<영국, 2003, 감독 켄 로치, 오후 7시30분, 야외

켄 로치가 작가 폴 래버티와 함께 <내 이름은 조> <스위트 식스틴>에 이어 만든 ‘글래스고 3부작’ 마지막 영화다. “글래스고는 오랜 투쟁의 역사가 있고 강한 문화를 소유한 도시이기 때문에 런던보다도 드라마틱하다”고 말한 켄 로치는 이 퇴락한 공업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 뿐만 젊은이들의 사랑도 발견했다. 파키스탄 이민 2세와 백인 가톨릭 교도의 만남. 정치적인 투쟁의 전선이 희미해진 <다정한 입맞춤>은 영국에서도 변방인 도시 글래스고와 마이너 종교인 가톨릭, 차별받는 아시아 이민 등 다층적으로 겹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카심은 글래스고에 살고 있는 파키스탄 가족의 맏아들이다. 부모의 기대를 짊어지고 있는 그는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녀가 있지만, 여동생이 다니는 학교의 음악교사인 르와진과 사랑에 빠진다. 르와진은 어린 시절 철모르고 결혼한 남편과 별거 중인 가톨릭 교도다. 완고한 학교 주임신부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가톨릭의 전통과 정숙해야 하는 신도의 의무를 들먹이면서 르와진을 나무라고 재임용 문제까지 거론한다. 르와진은 카심에게 기대고 싶지만,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알고 있는 카심은, 가족과 르와진 어느 쪽에도 선뜻 온마음을 가져가지 못한다. 이민 2세인 그는 인종차별에 시달린 부모가 어떤 고난을 겪었고 어떻게 버텨왔는지 지켜보았다.

스코틀랜드 출신 시인 번즈에게 제목을 빚진 <다정한 입맞춤>은 그 시처럼 로맨틱하거나 센티멘털할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는 여러번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됐지만, 사랑을 위해 가족이나 전통을 등지는 건, 목숨을 버리는 일보다도 복잡해 보이기만 한다. 카심과 르와진은 그저 토닥거리며 다투고 누구의 집에서 살 것인지 신경을 곤두세우기만 하면 되는 평범한 연인이 아니다. 수십년 동안 쌓여서 한 사람을 만들어낸 복잡한 덩어리가, 그들 사이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불화를 빚어낸다. 그러나 <다정한 입맞춤>은 귀여운 면도 가지고 있다. 카심과 르와진이 누가 먼저 화해 전화를 할 것인지 초조해하는 모습은 건조했던 켄 로치의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마음 놓이는 풍경이다. 켄 로치는 “이 영화의 인물들은 전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분투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묵직한 투쟁을 발견하는 건 무뎌질 줄 모르는 거장의 힘일 것이다.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