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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는 차마 못 떨칠 습관이다
2004-10-09

부산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제법 고민을 했다. 가면 가고 밀면 마는거지, 그런 하찮은 고민을 하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이 '소심하고 째째한' 고민은 열흘 남짓 내 뒷꼭지에 붙어 있었다. 막상 가려고 마음을 먹고보니 꼴에 명색이 영화사 대표랍시고 혼자 휭하니 가서 영화나 보고 올 처지가 아니었다. 교통편은? 숙소 예약은? 영화제에 가고 싶어하는 직원들은 물론 일과 관련 있는 몇몇 지인들 편의를 챙겨야 했다. 게다가 영화제에 가면 연락해서 밥이라도 한번 사야할 사람들이 불쑥불쑥 생각나고 그 명단은 점점 늘어났다. 움직이면 다 돈인데...슬슬 짜증이 나서 안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또한 아직 무늬만 제작자인지라 내가 부산에 가야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부산에서 뵈야죠...? " 추석 즈음부터 전화 통화하는 사람들의 인삿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예? 아...예...그러지요'하고 얼버무리면서 속으로는 중얼거렸다. "쳇! 누가 부산 간댔나...?"

그런데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에 와 있다. '소심하고 째째한' 고민이 시원하게 해결된 것도 아니고, 상영작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볼 영화 리스트를 만든 것도 아니고, 공식 초청을 받은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같이 일하는 식구들 등을 떠밀어 새벽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은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 앞 골목길의 한 PC방에서 <씨네21 PIFF 데일리>의 한 꼭지를 '막기'위해 마감에 쫓기며 허접한 글을 쓰고 있다.

개막 나흘째, ID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게으른 탓에 표를 구하지 못해 영화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다. 대신 이 오지랖 넓은 얼치기 프로듀서는 <씨네21 PIFF 데일리>를 한장한장 넘기며 편집 사고가 없는지, 정작 영화는 몇 편 보지도 못했으면서 상영작들의 경향이나 관객들의 반응, 영화제 진행 상황은 어떤지 따위나 탐문하는 변죽만 울리고 있다. 내 손으로 만든 영화를 들고 부산에 오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겁없이 제작자로 나선 지가 벌서 몇 년인데, 아직도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에만 오면 자신이 <씨네21>기자인 듯 모드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거의 해마다 빠지지 않고 영화의 바다에 다이빙은 했지만, 정작 내게 부산국제영화제의 추억은 영화가 아니다. 수년간 데일리 스탭으로 일하면서 영화제 기간 중에 상영관에서 본 영화가 몇 편 안되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대화나 감독, 배우 등 인터뷰를 위해 억지로 본 영화들을 빼고, 제 발로 들어가서 본 영화는, 제3회 영화제 때 오로지 상영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봤던 (67분인가?), 잠깐 자러 들어갔다가 영화 속 주인공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끝까지 봤던 , 야외상영장이 너무 추워서 보다가 나온 폐막작 <간장선생> 등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에 얽힌 별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으로 해마다 발길이 향하는 것은 남포동 PIFF 광장에 넘쳐나던 관객들의 열기나, 동이 틀 무렵 숙소로 가며 개근했던 자갈치 시장(나에게 추파를 던지던 '김해집'의 젊은 아줌마는 안녕하신지?)과 해운대 바닷가의 새벽 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지리하던(당시에는 정말 그랬다!) 데일리 마지막호를 내고 그때까지 남아있던 동료등과 함께 놀았던 태종대와 광안리의 조악한 바이킹이며, 달맞이 고개와 송정 등에서 벌였던 한없이 유치찬란한 이벤트의 감회도 내겐 좀처럼 채도가 떨어지지 않는 부산의 추억들 때문일까.

덧불일 것 하나. 공소시효도 지났을테니 청산할 과거사가 있다. 데일리팀에서 일할 때 걸어 다니는 뉴스 레이더라고 후배들에게 눈속임하고, 취재력으로 밥값한다며 폼 잡을 수 있도록 '고급 정보' 슬슬 흘려준 이 아무개 부집행위원장께 특별히 감사!!! 남동철 편집장! 장염 앓아서 영화제 '관광'왔던 동료들 졸지에 데일리팀으로 징발했던 악몽이 다시 없기를...다들 몸 건강히 살아돌아 가길...독자 여러분들도 좋은 추억 가득하시길...두루 기원!!!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전 <씨네21>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