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가 스파게티 웨스턴에 바친 헌사 에서 보듯, 아메리카의 서부라고 알고 있던 현장은 사실 스페인 알메리아 등지의 황야였다. ‘달러 삼부작’의 성공으로 미국의 초대를 받은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스파게티 웨스턴은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에 발을 내딛게 된다(대부분의 장면은 여전히 스페인에서 찍었지만). 그런데 레오네는 내심 한편의 웨스턴을 기대했을 제작사와 생각이 달랐으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이하 국내개봉 제목 <웨스턴>)는 스파게티 웨스턴에 이별을 고한 작품이었다. 세르지오 코르부치나 다미아노 다미아니 같은 좌파성향 스파게티 웨스턴의 동료들이 피끓는 영화를 만들 동안 상대적으로 낭만적 세계를 견지했던 레오네는 <웨스턴>에서 정치적인 색채를 드러낸다. 모두가 혁명을 이야기하는 1960년대 말, 각본에 참여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곳곳에 좌파의 기운을 담아놓은 것이다. 죽음의 발레와 와일드 보이들이 떠난 곳에서 거대한 대륙의 역사와 비전을 반추하는 새로운 연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웨스턴>까진 대지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그는 <철마> <수색자> <셰인> <하이 눈> 그리고 <자니 기타>를 넘나들면서, 복수의 인디언, 어머니와 창녀, 로맨틱한 무법자, 썩은 자본가와 그와 결탁한 악당의 엇갈린 운명을 서부에 배치시키고, 남자들이 죽거나 떠난 공간에 물을 잉태한 여자만을 남긴다. 하지만 ‘스위트워터’란 상징적인 공간에서 이상을 꿈꾼 레오네 자신도 이어질 삼부작에 드리운 비극적 운명은 몰랐다. 아메리카에 대한 그의 비전이 바뀌면서 <석양의 갱들>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비관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레이스 아래 누워 있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얼굴이 그대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로버트 드 니로와 오버랩되는 순간, 현대의 아메리카는 생명의 여신이 아닌 파괴와 상실의 폭군을 맞이했던 게다.
<웨스턴> DVD의 날선 영상과 충실히 재현되는 목소리, 엔니오 모리코네의 스코어는 영화를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세르지오 레오네 전문가, 후배감독 그리고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과 삼부로 나뉜 다큐멘터리, 그외 인상적인 부록들엔 허투루 나온 것이라곤 없다. 그 속에 등장하는 ‘폭력의 오페라, 죄의 대가, 죽음에 대한 어떤 것, 전설’ 같은 말도 형식적인 미사여구로 들리지 않는다. 한줄 선율과 영화에 대한 기억만으로 가슴이 울컥해지는 영화가 있다. <웨스턴>이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