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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거저 먹은 TV영화 배부르지만‥허전한

추석 연휴는 극장가 최대의 성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북적대는 극장에 가기 보다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안방극장’을 즐기는 게 더 좋다. 특히 이번 추석은 ‘중고제품’이기는 하지만 개봉관보다 질적인 면에서 더 성찬에 가까운 영화들이라 매일 밤 채널을 오가면서 영화삼매경을 즐겼다. 특별 상차림이 차려지는 연휴 때가 아니더라도 나는 텔레비전 영화를 꽤 즐기는 편이다. 그것도 외화에 자막처리를 하는 케이블이나 교육방송이 아닌 더빙된 공중파 채널의 영화를 말이다.

이번 추석에도 지금까지 나온 디브이디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확장판 디브이디를 책장에 처박아 둔 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영화를 신나게 봤다. 도덕교과서 방식의 문체로 더빙된 대사는 때로 실소를 자아냈지만 그 역시 꽤나 즐거운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순정파들에게는 ‘변태’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작태다.

올드 버전 가운데도 한참 늙은 텔레비전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는 건 아니다. 남들처럼 어린 시절 ‘주말의 명화’로 길들여진 관람태도에 게으름이 보태져서 만들어진 습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굳이 한가지 변명을 보태자면 텔레비전 영화에는 극장 관람이나 비디오 대여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발견’이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개봉관을 찾거나 비디오를 고를 때는 내 의지만이 100% 작동을 하지만 텔레비전 영화에서는 전원만 켜면 퍼주는 밥을 먹어야 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도 남다른 애정도 없던 시절 텔레비전이 떠 주는 밥의 반 이상은 그저 그런 것이었지만 때로는 돈주고도 사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 차려지곤 했다. 이를테면 승용차와 트럭, 달랑 차 두대 만으로 한시간 반동안 아찔한 긴장과 공포를 만들어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초기작 <대결>이나, 비디오 출시도 안돼 그때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못봤을 우디 앨런의 <바나나 공화국>같은 영화가 그렇다. 일요일 내내 빈둥거리다가 무심코 켠 텔레비전에서 발견한 이 보석들은 우연한 발견이기에 더 큰 포만감을 안겼다.

그러나 공중파 3사가 경쟁적으로 화제작 상영에 열을 올리면서 ‘발견의 즐거움’을 찾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같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홍수처럼 쏟아내는 매체들의 역할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우연한 발견이 이뤄지기에는 매체들이 너무 일찍부터 요란스레 떠들어대고, 반면에 텔레비전 영화담당자들은 ‘안전한’ 시청률이 보장된 흥행작으로만 가려고 하니 떠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시청자로서는 별 도리가 없다. 하루 빨리 디브이디족으로 업종전환을 하든지, 텔레비전 영화가 좋은 그럴싸한 이유를 새로 만들어내든지, 하는 수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