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흉포한 용과 동양의 성스러운 용이 다르듯, 유럽의 인어와 일본의 인어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라인 강이나 지중해에서 달 밝은 밤 초록색의 긴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는 매혹의 인어는 일본에 오면 날카로운 이빨에 흉측한 얼굴을 가진 괴물로 둔갑하게 된다. 그래도 닮은 점이 있다면 양쪽의 인어 모두 인간을 유혹해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인어가 아름다운 외모와 노래로 인간을 꼬인다면, 일본의 인어는 영생을 보장하는 자신의 고기로 인간을 꼬드긴다. <란마 1/2> <견야차>의 다카하시 류미코가 안내하는 예상 밖의 공포세계는 인어 고기에 얽힌 단편 연작이다.
<은하철도 999> <무한의 주인> <잭과 엘레나> 시리즈 등 걸작 만화 중에는 영생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질기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자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계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를 타고 가는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만 메말라가는 영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기계 인간들을 만나고, <무한의 주인>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는 육체를 얻은 만지는 수백명의 목을 자르면서 점점 무감해지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다.
<인어> 연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어릴 때 인어 고기를 먹고 영생을 얻은 꼬마는 어른의 몸으로 자라지 못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엄마를 얻어 이용한 뒤 죽이는 일을 반복한다. 어린 시절 인어 고기를 두고 다툰 자매는 흉측한 몰골로 평생 동굴 속에 숨어 지내거나 그를 감추어두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신세가 된다. 500년 전 인어 고기를 먹고 불로불사의 몸이 된 주인공 유우타는 오늘도 인어를 찾아 떠돌아다닌다. 이미 얻은 영원한 목숨에 또 다른 목숨을 더하려는 게 아니다. 부모도 연인도 잃고 길고 긴 세월 동안 홀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다시 인어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류미코는 독특하고 시니컬한 태도로 목숨에 얽힌 서늘한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그녀 최고의 장기인 왁자지껄한 유머를 없애고도 단단한 걸작들을 엮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인어> 연작은 <소년 선데이>에 부정기적으로 연재된 시리즈로, 국내에서는 최근 <인어의 숲> <인어의 상처> <야차의 눈동자>, 세권으로 구성된 박스세트(학산문화사 펴냄)로 출간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