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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호를 내놓으며

요즘도 아동용 세계명작전집이 잘 팔리나?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웬만한 집엔 문고판전집이 하나쯤은 있었다. 우리집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생겼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친척 중에 월부 책장사를 하는 분이 계셔서 구입한 것이다. 50권 문고가 생긴 날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한달쯤 다른 거 안 하고 그 책만 보는 것으로 행복했다. 한권한권 1권부터 50권까지 독파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다 읽으면 다른 전집을 사달래야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읽었다. 짐작하겠지만 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몇권을 읽고나자 남은 수십권보다 또 다른 전집 50권이 탐났다. 다른 전집을 사달라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비슷했다.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카뮈, 카프카 등 쟁쟁한 문호의 책을 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두권 읽다 포기했다. <죄와 벌>을 제쳐두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었고 조흔파의 소년소설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그간 모은 용돈으로 작은 오디오를 샀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레드 제플린의 앨범 3개를 사다놓고 1주일간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하드록의 모든 것을 마스터하겠노라 비장한 결심을 했지만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뮤직비디오로 접한 마돈나에 넋이 나갔고 콧노래로는 늘 이문세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뭐 하나 제대로 파고드는 게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버릇이 쉽게 고쳐지진 않았다. 대학에 가서 사회과학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살던 때도 방학이면 무협소설을 탐닉했다. 가끔 민중이 고통받는데 이런 쾌락을 누린다는 게 죄스러웠지만 누가 알겠냐 싶었다. 허름한 삼류극장에서 영화보기를 즐길 때도 그런 심정이었다. 요즘엔 이게 실존적 고민으로 승화(?)됐다는 느낌도 든다. 술을 먹기 위해 안주를 먹는 건지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건지 헷갈릴 때가 그렇다. 대체 분명한 목표를 갖고 체계적으로 사는 일이 현실에서 얼마나 가능한지 궁금하다.

엉뚱한 얘기 같지만 잡지를 만드는 것, 잡지를 읽는 것, 다 이런 심리가 아닐까 싶다.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될 한 가지 일, 대단한 야심을 가진 명작을 만드는 일, 그런 것은 잡지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애거사 크리스티와 김용의 소설이 뒤섞이고 레드 제플린과 바흐와 이문세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곳. 잡지는 그런 공간이 아닐까. 잡스런 생각이, 잡스런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만들고 그런 사람들이 주로 읽는 책, 그래서 잡지라고 부르는가 보다. 영화전문잡지지만 <씨네21>도 그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몇 가지 개편을 했다. 크게 보면 컬처잼 지면에 생긴 기획기사가 눈에 두드러질 것 같다. 갑자기 웬 이슬람?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영화잡지가 포용해야 할 또 다른 세계를 컬처잼 기획기사가 채워나갈 예정이다. ‘김혜리 기자의 밑줄긋기’, ‘이주의 아티스트’, ‘이주의 공간’ 등 작은 꼭지들이 새로 생겼다. 리포트 지면은 전보다 오밀조밀하게 꾸몄다. 자잘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담고 싶어서다. ‘TV를 보다’를 쓰던 신윤동욱씨가 ‘이슈’ 코너를 맡았고 화제의 사진 한장을 담은 ‘한컷 뉴스’를 신설했다. 씨네필 지면엔 ‘다르게 보기’와 ‘투덜군 투덜양’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딱딱하고 엄숙하기 쉬운 영화읽기를 쉽고 재미있게 바꾸려는 시도다.‘투덜군 투덜양’은 <출발! 비디오여행>에서 <결정적 장면> 코너 작가로 일했던 한동원씨와 과거 ‘아가씨’ 코너에서 웃음을 선사했던 김은형씨가 맡는다. 20자평 지면에 신설된 ‘오픈칼럼’은 <씨네21> 기자들이 돌아가며 영화 또는 취재에 관한 단상을 쓸 것이다.

인사가 조금 늦었지만 새로 합류한 2명의 기자가 있다. 문석 기자는 지난 7개월간 영화현장에서 일하다 돌아왔다. 제작현장을 거치면서 “역시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영화를 보는 쪽이야”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종도 기자는 <한국일보>에서 영화담당기자를 하다 <씨네21>로 왔다.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된 적 있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맘껏 발휘하도록 독려할 생각이다(오자마자 일복이 터졌다).

잡다하지만 구석구석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잡지, <씨네21>의 이번 개편에 목표가 있다면 그런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기 위해 <씨네21>을 보는지, <씨네21>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는지 헷갈리는 실존적(?) 갈등이 생기기도 할까? 갑자기 그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