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모네, 고갱, 로트레크. 한국인들에게 제일 익숙한 화가들이다. 그중에서 으뜸은 고흐일 것이다. 고흐가 보여준 특유의 화려하고 섬세한, 그리고 개성적인 화풍은 대형 프린트 포스터와 광고 등의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자기 귀를 잘라내고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격정의 삶도 예술가의 표본처럼 소비되었다. 소설가 김영하의 지적처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생애는 우리 시대의 키치가 되어버렸다. 미술관의 아우라보다는 달력에 인쇄된 그림이 더 친근한 것이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만화가 그라디미르 스무자는 대뜸 ‘그 그림들은 반 고흐의 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였던 고양이 빈센트의 작품이야’라고 딴죽을 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재능이 없어 늘 낙담하고 괴로워하던 반 고흐는 우연히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주게 된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자신이 ‘고양이로 둔갑한 요정’인 ‘빈센트’라고 이야기하며,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린 증조할아버지와 외젠의 그림을 그린 할아버지를 거론하며 자신은 타고난 화가라고 말한다. 반 고흐와 함께 살게 된 빈센트는 화려한 필치로 여러 그림을 그리지만, 밤마다 바깥으로 쏘다니며 술과 놀음과 여자에 탐닉했다. 끝내 위조지폐에까지 손을 대고 결국 감옥에 들어간 뒤 정신분열에 걸려 자살하고 만다.

이 만화는 매우 유쾌한 필치로, 번뜩이는 재치로 고양이 빈센트의 삶을 빌려 반 고흐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의 곳곳에 반 고흐의 작품은 물론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하고 있으며, 당대의 사건과 연결되는 고리를 만들어놓았다. 매우 섬세하게 읽어보고, 작품 후반부에 붙어 있는 등장인물과 배경, 그리고 이 책에 숨어 있는 명화들을 참조하고 다시 읽어나가면 또 다른 기쁨을 얻는다. 작품 말미 클로즈업된 두개의 묘비명은 이 모든 가상의 사실을 현실적으로 믿게 하는 작가의 재치다. 그라디미르는 고양이 빈센트를 통해 키치가 되어버린 반 고흐의 그림에 뮤즈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새로운 교양이 눈을 뜬다. <빈센트와 반 고흐>는 만화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의 매력적인 모델이다. 부디 이 만화가 좋은 독자들에게 발견되어져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기 바란다. [그라디미르 스무자 글·그림/최정수 옮김/아트북스 펴냄]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