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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리닝 차림으로 아이들과 소풍 갔다 돌아왔습니다.”
2004-09-17

<꽃피는 봄이 오면>의 최민식 인터뷰

"'츄리닝' 차림으로 아이들과 소풍 갔다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말해, 배우 최민식(43)이 관객을 실망시킨 적이 있었던가? <해피 엔드>에서 아내와 정부를 죽인 후 흐느낄 때, <파이란>에서 후배들에게 무시당할 때, 관객은 함께 가슴을 쓰러내렸고 또 아낌없이 눈물을 쏟았다. 지난 한해 <올드보이>의 오대수만큼 영화 팬에게 익숙한 이름도 없다. 최민식이 <꽃피는 봄이 오면>(이하 꽃봄·제작 씨즈엔터테인먼트)으로 다시 한 번 관객의 마음을 헤집어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류장하 감독의 데뷔작인 <꽃봄>은 강원도 탄광촌 중학교에 임시 음악교사로 부임하게 된 트럼펫 연주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 현우는 교향악단에 들어가지 못한, 주류에서 밀려난 트럼펫 연주자다.

"무슨 북한의 인민배우도 아니고…"라며 자신을 '국민배우'로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그를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요즘처럼 말을 많이 한 적은 없다. 영화 홍보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하는 그는 <꽃봄>에 대해 "피곤한 노총각의 여정을 명쾌하면서도 유쾌하게 전달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휴식하듯 쉬면서 연기했다

"휴식이고 아이들과의 소풍이에요. <꽃봄>이 무슨 각이 있다든가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연기를 해야 한다든가 하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그는 촬영을 마친 소감을 말하며 '휴식'과 '소풍'을 강조했다. 전에 촬영장에서 말했던 대로 "막걸리 한잔하는 기분"으로 편하게 연기했다는 것. "<올드보이> 때처럼 하면 이 영화는 망해요. 말하자면, 그때 입었던 갑옷과 투구를 그대로 입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정장이나 턱시도를 벗고 남방이나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셈이에요."

친근감 있는 노총각의 여정

여자친구는 결혼한다고 하고, 오디션은 볼 때마다 미역국이고… 영화 속 주인공 현우의 현실은 꿈에 비해 한참 작아 보인다. 하지만 최민식은 자칫 우울하고 냉소적으로만 그려질 수 있는 현우의 모습에 넉살을 붙여 입체감을 줬다. "사실 누가 돌아가셔도 월드컵 4강에 (한국이) 올랐다면 박수가 나오잖아요. 짜증이 나도 코미디 프로그램 보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사람이니 냉소적이기만 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굳이 우울하게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나 영화나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지루하면 설득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 "약간 퉁겨나와도 다시 제자리에 올 수 있다"면 인물에 유머가 섞여 있는게 오히려 좋다는 말이다. 그는 현우에 대해 "피곤한 노총각의 여정이지만 명쾌하고 유쾌하게 전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펫 배우다가, 성질 다 버렸다

트럼펫 연주자인 현우 역에 캐스팅된 후 최민식은 촬영 두달 전부터 개인교습을 받았다. 하지만 악기라면 <취화선> 때 단소를 불어본 경험이 전부인 그에게 트럼펫 연주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트럼펫 연습) 하나 빼고는 (촬영 내내) 다 좋았다"며 트럼펫 연습의 어려움을 늘어놓았다.

"성질 다 버렸어요. 트럼펫 우습게 보다가 큰코 다친 셈이죠. 시작 전에 직접 연주해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수록하겠다고 말했던 게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처음 두 달 아무리 연습을 해도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다들 오랫동안 연습을 한 분들인데 그분들 수준이 되는 게 어디 쉬웠겠어요?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 알았죠." 처음은 힘들게 시작했지만 영화의 개봉을 앞둔 현재 그의 연주 실력은 약속대로 OST에 4곡을 직접 연주해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 그는 "강박관념이 없어지니 트럼펫이 너무 좋아졌다"며 "최근에는 (다른)영화 음악들을 연습하는 데 한창 빠져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다 똑같아요

"겉으로는 '틱틱'대다가 돌아서면 가슴 아프고 그러다가 또 짜증내고 후회하고…"

영화 속 주인공 현우는 사람들과 갖는 인간관계 속에서 '겨울'을 난다. 친구들, 여자친구, 관악부 아이들, 시골 약사 등 현우와 그가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영화가 갖는 시선은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다. "어디 할 수 있으면 독립해봐라"고 아들을 구박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는 현우의 모습도 마찬가지.

"똑같아요. 냉장고 김치 떨어졌다며 조금이라도 더 가져다주려고 하고. 저는 걱정하지 말라며 짜증냈다가 후회하고, 가슴 아파하다가 또다시 투정하고…" 최민식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다. 연기활동에 대해 집안의 반대가 심했고 남들보다 일찍 '독립' 생활을 시작했던 것. "결국 다 그러는 것 아닐까요? 투정과 반성을 반복하다가 결국 돌아가신 뒤에는 마음 속에 계속 담아두게 되는 것 같아요."

국민배우라니요. 무슨 인민배우도 아니고

최근 배우들의 서명을 받아 발표되는 이런 저런 성명서에 최민식의 이름은 거의 빠짐없이 들어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영화인, 파병 반대 영화인이 최근 그가 얻게 된 새로운 명칭. 그는 고(故) 김선일씨를 추모하는 집회에도 영상 메시지를 보낸 바 있으며 '쓰레기 만두' 파동 때는 직설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국민 배우'로서의 부담일까? 그는 "어떤 나라에도 없는 '국민배우'라는 말도 인정할 수 없고 그렇다고 스타로서의 부담감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저 한 명의 국민, 혹은 문화인으로서 의견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정치적 목적이나 야심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질문이 오면 느끼는 대로 얘기하는 것이죠. 영화인답게 의견을 표출했으면 좋겠어요. 대학 다닐 때도 총학생회 집회할 때 연극영화과에서는 마당극을 들고 나갔거든요. 누구든 자신만의 의견 표시 방법이 있는 것이고 저는 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죠"

서울=연합뉴스, 사진=씨네21 손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