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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25% 빚테크’ 쪽박 거위에 채운 재갈

<달마야 놀자> <황산벌>을 제작한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는 한국 영화의 돈굴리기를 ‘빚테크’라고 말한다. 한 영화의 흥행이 터져도 전에 만든 망한 영화의 빚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고, 이미 제작 들어간 영화가 또 빚을 만들고 있고 그래서 다시 새 영화를 만들고…. “제작자가 게을러도 빚 갚기 위해서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이 대표는 그래서 “한국 영화의 힘은 빚”이라고 규정한다.

관객 1천만 시대를 맞은 한국 영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돈이 투자, 재투자되는 구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소수의 영화가 크게 터질 뿐 다수의 영화는 손해를 본다. 제작자나 투자자별로 대차대조표를 맞춰보면 남는 장사를 한 데가 많지 않다. 지금은 남아도 몇개월 뒤 어떻게 될지 항상 불안하다. 당장 올 상반기 한국영화의 흥행 저조가 하반기와 내년 초의 자금사정에 찬물을 끼얹을 수밖에 없다. 99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지금 20곳 가까이 되는 100억원 규모 영상투자 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25%를 밑돈다. 안정적으로 돈이 쌓이는 곳은 멀티플렉스 극장과 그걸 체인으로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다. 충무로에선 영상펀드 자본 시대에서 90년대 중반처럼 다시 대기업자본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수의 제작자들은 투자자를 옮겨다니며 위태로운 ‘빚테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명필름은 지난해 <바람난 가족>의 투자자를 찾아 헤맸으나 구하지 못했다. 궁리 끝에 인터넷 펀드 모집이라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한 계좌당 100만원씩 1인당 10계좌로 상한선을 정해 이익이 나면 나눠주고, 손해볼 땐 최소 원금의 70%는 돌려준다는 조건이었다. 600여명으로부터 20억원이 들어왔고 흥행에 성공해 투자 세달 뒤 원금에 60%를 얹어 돌려줬다. 대박 터진 다른 어떤 영화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이익이 분배됐다. 또 영화에 투자할 기회를 일반인에게 넓혔고, 이에 따른 영화로의 관심 증대라는 부대효과까지 얻었다. 물론 흥행이 됐으니까 하는 말일 수 있다. 흥행에 실패했을 때, 사정이 좋지 않으면 약속한 원금 보장 한도도 못 지키는 사태가 생길지 모른다. 인터넷펀드를 빙자한 사기극도 예상할 수 있다. 인터넷 펀드는 제작자들에게 상용하긴 어렵지만 가끔씩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떠올랐다.

명필름이 최근 <안녕, 형아>를 기획하면서 다시 인터넷 펀드로 19억5천만원을 모으겠다는 광고를 냈다. 그러자 금융감독원이 올해 새로 도입된 간접투자자산운용법을 내세워 이런 모집이 불법이라는 통고를 지난 14일 명필름에 해왔다. 금융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투자를 받을 땐 일정자격 이상의 금융기관을 끼고 해야한다는 게 그 취지다. 금감원의 우려는 이해가 가지만 영화계의 원활치 않은 돈 흐름에 숨통을 트게 한 인터넷 펀드 방식을, 피해사례가 생기기도 전에 막아버리는 건 안이한 관료주의에 가깝다. 금감원은 명필름에 보완책을 마련해 오면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명필름은 금감원과 협의해 합법적일 수 있는 방식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혜안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