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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걷고 내 영화를 이해해달라”
2004-09-15

<빈 집>의 김기덕 감독, 이승연 귀국 공식 기자회견

제61회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감독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나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걷고 내 영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여주인공 이승연은 "어려운 시기였지만 덕분에 좋은 작품으로 좋은 곳에 가게 됐다"며 "김감독과 스태프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영화는 다음달 중순께 국내 팬에게 선보일 예정이며 조만간 1주일간 소규모로 상영회도 마련된다.

다음은 기자들과 일문일답.

수상 소감을 말해달라

김기덕 영화를 찍고 결과(수상)를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베니스에서 서프라이즈 필름으로 선택하고 관객이나 비평가, 기자들에게서 상위권 점수를 받아 수상을 조금씩 기대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창의성이 좋게 평가돼 감독상과 미래 비평가상 등을 수상했다. 미래 비평가상은 전체 4천800명 지원자 중 선택된 26명이 경쟁작을 보고 뽑은 상으로, 대부분이 <빈 집>을 최고로 꼽았다고 들었다. 내 영화가 혐오감이나 불쾌감이 있다고들 알려져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상도 중요하지만 미래 비평가상도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그동안 나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걷고 또 내 영화를 이해하는 계기 됐으면 좋겠다.

이승연 너무 감사하고 김기덕 감독님께도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싶다. 좋은 작품 같이 해주신 스태프에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별로 하는 일 없는데 조그마한 역할로 수상 기쁨을 함께 누리게 돼 좋다.

해외영화제를 다녀온 소감을 말해달라.

이승연공식적으로 큰 영화제에 다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김감독님을 다 알아보고 사인도 요청하고 <빈 집>이 좋다고 호평도 하고 그러더라. 어리둥절하고 깜짝 놀랐다. 감독님께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해 놀랐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덕분에 좋은 작품으로 좋은 곳에 가게 됐다. 사실 지금도 잘 실감이 안 간다.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김감독의 영화에 찬성과 반대가 분분한 편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김기덕 많지는 않지만 내 영화를 지지하는 어떤 분들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에 대한 비판이 나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내 영화의 스타일이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가학적인 영화라는 해석조차도 내가 볼 때는 가능하고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요구가 많은 사회다. 이런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영화 감독이 되기 전에 똑같은 의식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충분히 여성학자나 여성계에서 비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한국의 또다른 윤리나 도덕을 지키는 입장이니까. 그럼에도 그것을 반역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영화의 해석으로 표면과 이면의 관계를 표현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비난이나 오해에 감사해 하면서 영화작업을 해왔다.

비주류로서 해외 영화제에서 연달아 수상을 했다. 한국 영화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김기덕 양적으로 팽창한 것은 높이 사야 한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양쪽이 동등하게 발전해 갔으면 좋겠다.

앞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쉬워질 수도 있겠다. 20억 이상 되는 상업영화를 연출해달라는 러브콜도 있을 수 있겠다.

김기덕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기대도 없다. 제작사와 극장의 네트워크 자체가 허락을 안 한다. 한 자산가가 익명으로 돈을 보내주면 몰라도 자기 이름과 회사 드러내고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빈 집>도 국내 투자자를 접촉했지만 무산됐고 결국 일본의 돈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미 100만 달러 정도가 해외에서 영화제 기간 판매가 됐다. 이 영화의 배급 방식은 기존의 것과 다르다. 내가 제작하고 한국의 투자배급사에 판매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수입을 거두며 바로 수익이 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내 영화는 대부분 (수입이) 광고비를 넘기지 못해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오히려 20~30억 정도 되는 돈을 외국에서 부담없이 투자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제한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큰 돈은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도 같은 제작비와 15일 미만의 짧은 기간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마음껏 만들만큼 편하게 돈을 쓰는 성격도 못된다. 누군가의 피땀어린 돈이니까.

수상 이후 이승연 씨와는 어떤 얘기를 나눴나.

김기덕 이승연과는 수상 이후 오늘 여기서 처음 만났다. 아직 별 얘기 못했다. 눈빛으로 서로 고마워하고 있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기덕 해외의 평가들은 <파란대문>에서 시작됐다. 99년 베를린영화제 때 파노라마 오프닝작으로 상영될 때 유럽 프로그래머들의 관심을 모았고, 그래서 베니스나 베를린 등의 영화제에 꾸준히 다른 작품이 경쟁부문에 올랐다. 이번 수상은 이로 인해 모아온 관심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영화의 장점을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어떤 면에는 일본과 중국, 미국, 유럽의 상황이 바뀌어가는 시점에 한국 영화가 새로운 이미지, 드라마를 형성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해외에서)들은 얘기가 스토리의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의 영화라는 점이 좋았다고 심사위원들에게서 들었다. 내 영화는 많이 있었던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을 다루지만 그 이상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에 대한) 해석을 저희보다 깊게 해준 것 같다.

시상식 때 임권택 감독에게 인사를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임감독은 끝난 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던가.

김기덕 시상식 때는 무슨 상인지 몰랐다. 집행위원회로부터 본상의 하나다 정도의 얘기만 들었고 혹시 (이)승연씨나 재희씨의 남우 혹은 여우 주연상을 대신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상식 때 사회자의 실수로 감독상을 빼고 2등상(심사위원 대상)이 먼저 발표됐다. 그 바람에 혹시 황금사자상을 타는게 아닐까 하는 염치없는 생각도 했다. 현지 언론의 평이 너무 좋았으니까.

임감독님께 인사를 청해야겠다는 것은 수상 5분 전에 들었던 생각이다. 어차피 수상할 것이면 감독님께 예의를 갖춰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상대에서 임감독 소개했고 이후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집행위원회에서도 노장감독에 대한 예의로 세레모니를 장식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임감독님께는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로 가서 다시 인사를 드렸다. 임감독이 "다행이다. 두 편이 와서 아무도 못 받을 뻔했다. 자네가 받아 다행이다"고 말씀해주시더라. 역시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외상 수상과 국내 100만 관객 동원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김기덕 일단 사자(은사자상)와 곰(은곰상)으로 동물농장을 만들고 있다. 로카르노의 '표범'도 그리고 울타리를 치기 위해 칸의 '종려나무잎'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가 한국에서 100만명이 들었으면 좋겠다. 흥행모델을 띤 상업영화로서가 아니라 해외에서 호평 받은 한국영화가 100만 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받는 것보다 서로 오해가 풀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자꾸 이단아다, 아웃사이더다 그렇게 불리는데 실제로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내 영화를 비디오로 본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꼭 극장에 와야 관객인가. 그런 의미에서 100만명이 아니라 400만~500만명이 내 관객이 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영화를 만들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한국 사람들을, 또 한국 관객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항상 야구모자를 고집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시상식에서 가족을 언급한 이유는? 부인은 수상 후 어떤 말을 해주던가.

김기덕 사실 모자를 벗을 때도 많다. 이번에도 무대에 입장할 때는 모자를 벗기도 했는데 누가 '벗는 게 낫다'고 연락해주기도 하더라. 그래서 다시 썼다. 지난 번 베를린 때 뭐 그렇게 하고(입고) 시상하느냐고 한 방송에서 그러더라. 이번에는 협찬을 받아 양복을 입고 왔지만 양복이 아니라 가시철조망처럼 불편했다. 가족에 대한 질문은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감독이고 내게 쏠린 관심과 해석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주변 것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꺼린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인생이 있다.

주로 신인 배우들과 같이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김기덕 꼭 신인들하고만 (영화를) 하지는 않았다. 조재현씨도 스타이고 장동건씨도 스타이지 않나. 내 원칙은 내 영화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일한다는 것이다. 이승연씨나 재희씨도 사전에 대화해 내 영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알아봤고 이런 점이 캐스팅에 고려사항이 됐다.

배우 스스로의 현재 심리상태나 보이는 이미지도 고스란히 영화에 담는 편이다. 이번 영화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테크닉이 뛰어난 높은 게런티의 배우에도 관심은 있지만 꼭 재활용품 같다. 이미 쓴 것을 남아 있는 것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배제하는 편이다. 사실 배우들의 수는 많고, 하고 싶어하고 열정이 불타는 사람도 많다.

승연씨의 경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영화에 공감하고 좋은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영화를) 했다. 그럼에도 내 영화와 배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과하고 용서해 달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영화를 봐주면 고맙겠다. 이젠 그럴(용서하고 화해할) 때가 필요한 것 같다.

처음 영화를 할 때 꿈은 무엇이었나. 그 꿈이 지켜지고 있나.

김기덕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에는 내 이름이 자막에만 들어갔으면 하고 꿈꿨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관객이 많이 들기를 바랐고, 세 번째 영화에서는 해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꿈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텅 비었다.

자꾸 지나치게 과장되는 것 아닌가 경계하고 있다. 창작의 문이 닫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존재한다. 그럴수록 이제는 블록버스터나 흥행영화라는게 유혹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수록 작고, 짧게, 영화를 찍으려 하고 있다. 제작비 10억원 안쪽으로 만든 영화가 가치를 인정받기 쉽다고 본다. 많은 돈에 톱배우 그리고 센세이션하게 관객 숫자를 늘리고 많은 돈을 버는 영화가 있지만 그 안에 본질을 담기는 힘들 것이다.

그동안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은 어떤 영화인가.

김기덕 다 똑같은 것 같다. <악어>가 있어 <빈 집>이 있는 것이다. 내 작품에 대해 갖는 편견은 없다. 시상식에서 '내 과거의 시간에 감사한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과거의 오해와 열등감이 많았던 시간들이, 내 자신의 불행을 너무나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시간들에 고맙다. 현재가 높다고 해 과거가 얕다는 것 같은 함정에는 빠지지 않겠다. 현재의 높이만큼 과거의 높이도 같다. 수평적이다. 작품이든 사람이든.

<빈 집>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김기덕 첫 장면의 프롤로그 부분이다. 유럽풍의 조각상과 골프망, 그 위에 맞고 떨어지는 골프공이 나오는 장면이다. 달려가지만 떨어지고 마는 우리들의 마음을 담았다. 물론 두 연기자의 연기도 굉장히 훌륭하다.

이승연 재희씨가 유령 연습을 하는 장면이 좋았다. 또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을 사이에 두고 재희씨와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마음에 든다. 많은 것들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부분이다.

대사가 없어 연기하기 힘들었겠다.

이승연 힘들었다. 힘들기도 하고 대사없어 오히려 편했던 면도 있었다. 연기할 때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나 몸짓만으로 더 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 좋았다.

재희 처음 시나리오 보고 대사가 없어 힘든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나 (이)승연 누나와 얘기를 많이 나누고 또 현장에서 승연 누나가 날 편하게 대해줬다. 서로 눈빛의 교감이 잘 이뤄졌고 이를 감독님이 잘 아줬다. 대사없는게 편안히 느껴지고 또 감정전달도 잘 됐다.

김기덕 영화에서 대사를 뺀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사라는 것이 줄거리와 앞과 뒤의 연관성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두 측면에서 대사가 없는 게 좋다. 우선 캐릭터에 내재된 본성을 들여다 보는데 도움이 된다. 또 외국에서 내 영화를 보는 데 문제없어 좋다. 굳이 신경 날카롭게 번역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나.

연기자로서 이승연 씨의 연기를 평가해달라.

김기덕 기회가 되면 두세 편 더 같이 해보고 평가하겠다.

상대의 연기에 대해 얘기해달라.(두 배우에게)

재희 사실 (이)승연 누나는 개인적으로 팬이었다. 첫 인상은 웬지 까탈스러워 보였지만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아무 벽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더라. 한참 선배이고 누나이니까 많이 얼기도 하고 그랬는데 누나가 말도 편하게 해주고 어드바이스도 많이 해줘 좋았다. 다음 작품도 누나랑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승연 재희씨가 너무 좋은 말을 많이 해줘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재희씨에게 많이 배웠다. 처음에 신인이었을 때 나도 과연 저렇게 열심해 했나 하는 반성도 했다. 지치지도 않고 오뚜기처럼 열심히 하더라. 많이 자극받고 많이 배웠다. 이번 일을 하면서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복되고 기쁜 것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다. 그래서 값진 시간이었다. 많은 분들, 감독님과 식구들에게 감사드린다.

연예계 복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승연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좋은 작품 만나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아득히 먼 일 같다. 베니스 갔다 오고 또 여러 일이 많아서인 듯하다.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에 감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앞날의 계획을 서둘러 잡는 것은 너무 빠른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어떻게 보면 김감독은 공교육의 최대의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

김기덕 질문의 해답을 울면서 신파조로 해야할 것 같지만 그런 기분은 전혀 없다. 이 사회는 모델이 필요하다.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를 재해석하는…. 학력 사회에서 학력이 아닌 것으로도 자신을 표현하고 발현하는 모델이 되면 좋겠다.

영화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김기덕 결과적으로 영화란 삶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수학이나 정치나 그리고 영화나 모든 것들이 삶이다. 영화 속에 내가 내 삶을 이해하는 태도의 무게가 연출에 반영되는 것이다. 영화는 삶이고 또 삶을 들여다 보는 작업이다. 시시한 대답같지만 모든게 삶이고 인생이다.

서울=연합뉴스, 사진=씨네21 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