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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형성하는 MBC <아일랜드>

버림받고 낙오된 네 젊은이“불쌍해서 좋고 좋아서 불쌍해”

흔히들 ‘고립’을 이야기할 때 ‘섬’을 빗댄다. 지난 1일 시작된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아일랜드> 또한 다르지 않다. <아일랜드>는 소통하지 못하고 ‘섬’ 처럼 홀로 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상처받은 존재들이 <아일랜드>를 이끌어간다.

입양아·실업자·고아·소녀가장

입양아 출신 중아(이나영)는 두 번 가족을 잃었다.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될 때 가족을 잃었고, 아일랜드 가족이 몰살 당하는 참극을 제 눈으로 봐야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한국으로 날아들었다. 생모를 찾지 않는 그의 귀국은 그저 ‘귀소본능’일 뿐이다. 그리고 “처음엔 불쌍해서 좋았고, 지금은 좋아서 불쌍하다”고 고백하는 국과 결혼한다. 어려서 부모와 함께 차 사고를 당했으나 혼자 살아남은 경호원 국(현빈)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중아를 첫눈에 알아본다. 백수건달 재복도 고아나 다름없다. 어릴 적 동생 중아와 헤어진 기억이 그를 망가뜨리고, 재가한 어머니에 대한 애증은 그를 한번 더 망가뜨렸다.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새 아버지 집을 나와 그는 “눈물도 이쁘고, 슬픔도 이쁘고, 모두 다 반짝거리는” 에로배우 시연에 얹혀 산다. 유명 아역배우 출신인 시연은 소녀가장이다. ‘발가 벗고 번’ 돈으로 무능한 부모와 줄줄이 있는 동생들을 먹여 살린다. “지랄”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의 겉은 거칠지만 여느 상처입은 짐승 마냥 뒷골목에 숨어 웅크리면 끝없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는 약한 존재다.

한국의 ‘잃어버린 세대’ 그들의 공감

미국엔 제1차 세계대전 뒤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있었고, 일본엔 80년대 이래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후리타족’(freeter)이 있다. 이들은 청년 실업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청년 실업률이 7%를 웃도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6·25 전후 태어난 부모를 둔 ‘베이비붐 2세대’도 ‘잃어버린 세대’다. 그들도 취업난에 시달리며 미래를 두려워한다. 아버지 사업이 망해 잘 나가던 아역배우에서 에로배우 소녀가장으로 전락한 시연의 이야기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남의 얘기가 아니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잘리는 국의 이야기도 재가한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애증의 눈으로 바라보는 재복도 이들에겐 공감된다. 중아와 재복과 국과 시연이 포기하지 않는 꿈은 더욱 이들을 위로한다. 그래서 이들은 <아일랜드>를 보며 감동하고 열광하고 고백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 환상은 없지만 희망은 있다. 맘만 먹으면 잡힐 것 같은 희망. 드라마는 내게 삶에는 심각하지 않은 일도,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심각한 일도 없다고 말한다”(김혜란)라고. 시청률이 이를 반증한다. 20대 여성·남성의 평균 시청률(1~4부)이 각각 6.6%와 3.4%(티엔에스 미디어리서치 조사)로 여성에서 1위, 남성에서 2위로 조사됐다. 10대·30대의 시청률도 일반적인 드라마에 견줘 높은 비율로 나왔다.

△ <아일랜드> 4부 촬영 현장. 스태프들의 긴장된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려있다. 재복(김민준)이 유리를 닦다 물을 떨어뜨려 중아(이나영)가 마련해준 옷이 젖자 국(현빈)은 “난 니 목숨보다, 이 옷이 더 중요하다. 내려와라. 맞짱 뜬다”라고 말한다.

신세대 감각의 대사·영상·음악

드라마 1부에서 재복과 시연은 편의점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 “어디 어디 고쳤니?” “가슴, 눈.” “괜찮다. 티두 안나구.” “나두 대강 만족.” “피부는 왜 그렇게 퍽퍽해?” “돈 버느라 고생해서.” “어려선 잘 나가드니. 집안 망했어?” “나. 알아 봤어. 아저씨?” 인물들은 짧은 말로 소통한다. 대개 어미나 조사가 생략된 한 단어만으로도 말이 통한다. 어찌보면 시 같고, 난해한 연극 대사같다. 간결한 대사는 인터넷 세대의 채팅 언어를 닮았다. 말이 짧고 딱딱 떨어지니 감정도 숨는다. 그러나 여운은 남는다. 대사보다는 분위기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울지 않는 배우를 보고도 눈물이 나는 드라마”(장진)라고 평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즈막히 읊조리 듯 뱉어내는 대사…. 대사 한 마디가 작은 표정이 너무나 가슴 아픈 드라마에요.” 영상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이 오가는 배경 속에 골목에서 숨죽인 채 울고 있는 시연과 재복의 모습(4부)은 한 장의 작품 사진 같았다. 영상 때문에 이야기가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을 정도로 영상미가 화려하다. 적절하게 사용된 배경 음악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다. 중아의 테마인 아일랜드풍의 ‘두번째달’(인디밴드 ‘두번째달’)과 시연의 테마인 ‘비가 와요’(이현우) 뿐 아니라 아일랜드 민요를 리메이크한 ‘대니보이’도 드라마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주의 드라마’ 두번째 실험

이미 지난 2002년 인정옥 작가는 <네 멋대로 해라>로 ‘인정옥 표’ 작가주의 드라마의 원년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 멋…>은 15~20%의 시청률을 얻는 데 그쳤지만, 그해 좋은 프로그램 드라마 1위를 차지했고 수많은 ‘인정옥 마니아’를 쏟아냈다. 이 때문에 <아일랜드>는 시작되기 전부터, <네 멋…> 속편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한 단계 올라서 새 지평을 열 것인가를 두고 관심과 걱정이 오갔다. 이에 대해 인 작가는 “<네 멋…>보다는 좀더 현실에 접근해 어려운 문제를 다룬 어른스러운 드라마가 될 것”이라며 “기본적 정서는 비슷할 수 밖에 없고 다만 하려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캐릭터나 정서적인 분위기가 <네 멋…>과 비슷하고, 이나영이 <네 멋…>의 전경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스토리보다 캐릭터 위주로 진행되는 드라마라 배우의 감정을 살려내는 연기가 매우 중요함에도 김민준이나 현빈의 연기에서 작은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작가주의 드라마 두번째 실험의 성패 여부는 작가나 배우가 얼마나 <네 멋…>을 넘어서느냐에 달려있다고 보인다. “한 작가의 마니아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작품과 다른 차별화된 무엇을 기대하는 심리와 이전의 작품에서 느꼈던 감성을 되살리고 싶은 경계선에 놓이는 아슬아슬한 곡예 넘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정빈)는 시청자의 말이 <아일랜드> 앞에 놓인 험난한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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