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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민식의 마음 [2]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외려 욕을 하죠”

남재일 |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지인한테 어떤 스타일로 친밀감을 표시합니까? 교보 광고에서 느닷없이 <젊은 그대> 노래부르는 거 인상적이던데….

최민식 | 나는 일부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 아내를 위해 온갖 생쇼를 하고, 나 같은 애처가가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걸 보면 토할 정도로 역겨움을 느껴요. 어떻게 저렇게 먹고살 수 있나, 애정을 빙자해서 저렇게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나. 내가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있는진 몰라도 속으로 좋아하는 게 진짜 좋아하는 거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나는 사랑해라는 말이 잘 안 나와요. 왠지 내 말 같지가 않아요. 요즘 방송을 보면 사랑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잖아요. 사랑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속으로 끙끙 앓고, 조심스럽게 표현을 해야 되고, 정말 사랑해야 그런 말이 나오는데, 이건 개나 소나 사랑해, 사랑해, 입버릇처럼 잠꼬대처럼 얘기를 해버려요. 그렇게 헛껍데기의 애정이 일단 듣기는 좋잖아요, 달콤하고. 하지만 난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남재일 | 그러면 부인이든 친구든 좋은 감정을 느끼면 어떻게 표현해요?

최민식 | 욕하고 그러죠. (웃음) 난 좋아하는 친구한테 욕을 참 많이 해요.

남재일 | 라디오에서 현대인들은 눈물을 안 흘려서 안구건조증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도 참 안 우는데, 어때요? 눈물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나요?

최민식 | 물이 진짜 뚝뚝 떨어지는 그런 눈물도 있지만,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것도 우는 거예요. 예전엔 그야말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특히 어렸을 땐 선생님한테 야단만 맞아도 눈물이 줄줄 샜는데 나이 먹으면서 눈물이 마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슬픔이나 아픔의 강도는 지금이 더 세죠. 더 오래 아리죠. 어렸을 때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울다가도 누가 위로해주면 금세 치유가 되는데, 이제는 어지간한 걸로는 위로도 안 돼요. 나이 들면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 더 아프게 각인되고 두고두고 슬퍼지는 그런 일들이 자꾸 생기잖아요.

남재일 | 그런 슬픈 일들이 주로 사람관계에서 생기는데, 40대의 나이에 아직도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나요?

최민식 |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한 호기심은 아직 있어요. 저 사람 참 재미난 생각을 하고 있네, 이런 생각이 들면 끌리죠. 그건 이십대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데, 달라진 건 실망스럽더라도 화를 내거나 저 새끼 다신 안 만나, 이런 도발은 안 하게 돼요. 옛날에는 호불호가 너무 선명했어요. 저런 인간은 나한텐 평생 도움이 안 돼, 이런 생각도 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요.

남재일 | 출연한 영화들이 연애관계가 중요한 영화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애하는 모습이 잘 상상이 안 가요. 어떤 여성에게 끌리나요?

최민식 | 섹시한 여자요. 본능적으로 섹시한 여자. 육체적인 섹시함도 있지만, 풍기는 느낌이 굉장히 섹시한 사람이 있어요. 육체파고 글래머 스타일이고 노출이 심하고 그런 것도 섹시하지만 별 포장을 안 한 여자인데도 굉장히 섹시한 여자가 있어요. 그런 섹시함을 잃어버린 여자는 매력이 없어요.

남재일 | 지금은 어떤 여자에게 섹시함을 느끼나요?

최민식 | 그건 안 가르쳐드릴래요. (웃음)

남재일 | 아까 사랑해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사랑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말로 하기 힘들겠지만, 그냥 지금 나이에서, 사랑이 뭐 같아요?

최민식 | 글쎄, 뭐라고 얘기를 해야 되나? 모르겠어요, 진짜로. 굳이 생각해보면 동물하고 똑같지 않을까요? 일단 외롭잖아요. 외로우니까 상대를 찾게 되고, 그럼 같은 남자보다는 여자를 찾게 되고. 본능적으로 수컷은 암컷을 찾고 암컷은 수컷을 찾게 되니까. 만나면 서로 부비고 서로 핥아주고 내 거로 만들고 싶어하는, 그런 거 아니겠어요? 사람들이 책도 좀 많이 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자제하지만, 까발려보면 외로우니까. 그런데, 그게 사랑인가요? 뭐, 미사여구를 많이 동원한 사랑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내가 어떻게 저 여자를 사랑할 수 있지? 하면서도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만나는 일이 많잖아요. 어떤 게 진짜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으면 되는 것 같아요.

남재일 | 여자인데 오래 친구로 지내는 사람 있어요? 섹슈얼리티를 조금도 안 느끼는데 친구로 오래 만난 여자가 있나요?

최민식 | 없어요. 그런 게 이해는 되지만 굳이 여자를 친구로 만나고 싶진 않아요. 여자는 여자로 만나고 싶지. 뭔 재미예요. 남자를 친구로 만나서 술 마시고 그러면 되지. 나는 이성을 만나면 동성을 만날 때보다 더 알고 싶어지고, 설레기도 해요. 그런 게 이성을 만나는 재미죠. 난 여자 만나서 온갖 허물없는 얘기 하는 애들 별로 재미없어 보여요. 뭔가 꼬불치기도 하고 적당한 긴장도 있고, 그런 게 재미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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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재일/ 문화평론가 commat@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