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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민식의 마음 [1]

사람을 연민하는 배우 최민식과 사람을 탐구하는 건달 남재일이 만나다

영화를 통해 본 최민식은 격렬하고 우울하고 따뜻하고 종종 무심한 듯 코믹했다. 배역이 다르니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도 나는 최민식이란 이름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상한다. 배역과는 무관한, 체취처럼 은밀하고 집요한 하나의 아우라. 그 아우라는 어떤 쓸쓸함이다. 쓸쓸함은 내게서 멀어지려는 사물에 대해 갖는 직관적 느낌이다. 멀어져서 사라질 것 같은 심리적 원근감에 대한 조건반사. 쓸쓸함은 그리움의 유전자를 호명한다. 그리움? 가장 고즈넉한 인간의 선의!

사람이 쓸쓸하게 보인다는 것은 보는 이의 마음 작용이지만, 보여주는 이의 무의식적 의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 어떤 이도 궁극적으로 쓸쓸함을 의도하진 않았을 게다. 쓸쓸함은 다가갈 곳 없는, 그러나 다가가고 싶은 자가 삼켜버린 독백이다. 구애의 절박함과 쑥스러움과 불가능함을 모두모두 삼켜서 만들어내는 존재의 탄식. 그러므로 귀가 열린 자에게 쓸쓸함은 아늑한 틈입의 여백이 된다. 겨울 햇빛 속에 놓인 조그만 사물에 마음을 주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쓸쓸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없이 어딘가로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사람. 아마 최민식의 진정한 팬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어떤 배역을 맡든 겨울 햇빛 속에 놓여 있는 것 같은 아우라에 본능적으로 감응하는 사람.

나는 그렇게 최민식을 느낀다. 긴 갈기 머리가 멋있고 눈이 맑고 깊고 슬픈, 쓸쓸함을 간직한 사람. 자신을 편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삼키는 게 많은 사람. 그래서, 더러 그가 보여준 격렬한 연기는 자신의 표출을 겨냥한 게 아니라 자신을 그냥 덮어두기 위한 몸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이게 진정한 배우의 자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사람의 진심은 한줌밖에 안 된다는데 그걸 드러내기 위한 연기가 뭬 그리 많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한줌의 진심을 꼭꼭 간직하기 위해서는 드러냄과 감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필요한가. 그 지점에서 가장 절절한 연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겨울 햇빛 속에 놓인 우물을 상상했다. 고집스레 고여 있는 듯하지만 깊은 수맥을 품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우물. 이 인터뷰는 그 이미지에 관한 것이다. 그게 단지 연기의 효과인지 그 사람의 삶의 문체인지 나는 그게 궁금했던 것 같다. 인터뷰는 강남의 한 카페에서 두 시간 정도 1차 하고, 중국집에서 저녁 먹으며 2차 하고, 실내포장마차에서 자정까지 3차 했다. 40대 남자 둘의 만남이 어색할까 싶어서 김혜리 기자가 동행하면서 참기름 같은 질문으로 틈새를 메워주었고, 김현정 기자가 대화내용을 낱낱이 기록해주었다. 아래 내용은 그 기록의 요약분이지만 되도록 어감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다.

“이 영화요? 온기가 느껴져서 했어요”

최민식 | 이번에 개봉하는 <꽃피는 봄이 오면>은 어떤 작품이고 어떤 점에 끌려 하게 됐나요?

최민식 | 좌절한 트럼펫 연주자 얘긴데… 아무 생각없이 선택한 작품이에요. 정말 쉬고 싶은데 그냥 놀면 심심할 것 같고, 시나리오가 주는 느낌이 좋아서 했어요. 쉬고 싶다는 마음과 그 시나리오가 주는 느낌이 맞아떨어진 거죠. 겨울에 등산을 갔다가 민박집에 들어가면 따뜻한 아랫목 있잖아요. 오리털 파카도 안 벗고 그냥 쓰러져 잠들 수 있는, 그런 온기가 느껴졌다고 할까요. 따뜻함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까? 그동안 혓바닥 자르고 피칠갑을 하는 자극적인 거에 시달렸잖아요. 그래서 덥석 하게 된 작품이에요. 진짜 쉰 것 같아요. 트럼펫을 배울 때는 아차 싶었지만(웃음), 트럼펫이란 악기하고 친해져서 결과적으로는 잘됐어요. 이 영화를 한 소득이 있다면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몸으로 알게 됐다는 거. 상당 수준의 연주 실력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배워보니까 와 이게 진짜 괜찮은 악기구나, 매력적인 악기구나, 느꼈어요.

최민식 | 악기하고 사람하고 궁합이 있다고 하던데… 트럼펫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요?

최민식 | - 글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질감이 맞다고 할까… 내가 갖고 있는 울분, 내가 갖고 있는 슬픔, 내가 갖고 있는 기쁨, 그런 게 트럼펫을 불면 풀리기도 하고 대신 얘기를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트럼펫 소리가 내가 말로 하는 것보다 얘기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잘 분다는 얘긴가? (웃음)

최민식 | 아까 말한 온기 있잖습니까. 아랫목 같은 온기. 휴식에 대한 갈망 같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한데…. 평소에도 아랫목 온기에 대한 갈망을 자주 느끼는가요?

최민식 | - 요즘 특히 심해요. 쉬는 거로 치면 사실 지금도 쉬고 있는 거죠. 작품 끝내놓고 인터뷰하고 술 마시러 다니고…. 딱히 휴식에 대한 갈망이라고 하긴 뭣하고… 좀 거창한 얘기 같지만 요즘 답답하잖아요. 사회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사회적인 분위기에 민감하게 살아왔던 사람도 아니지만… 요즘 들어 그런 답답함이 많이 느껴져요. 숨통이 조이고.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한해였고, 남들은 “네가 뭔 불만이 있냐? 너 같은 놈이” 그럴 수도 있는데, 심리적으로는 그랬어요.

최민식 | 제가 최민식씨 연기를 보고 떠올린 이미지는 투구게 같은 갑각류 이미지였어요. 꿈이든 상처든 속에 불이 있는데, 그걸 사회에서 허용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표출하지 못하고 격렬하게 터뜨리는 사람들이요. 맡았던 배역에 그런 인물이 많은데 특별히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런 인물에 끌린다 이런 게 있나요?

최민식 | - 특별히 이 배역은 내 거야 이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드라마들이 못 가진 사람들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기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죠. 평소 개인적으로도 그런 사람한테 정이 끌리는 건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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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재일/ 문화평론가 commat@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