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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적 쾌감의 혼수 상태, <연인>

<영웅>에 이은 장이모의 두 번째 무협액션대작. 그러나 3편도 만들 거라면 다른 각본가가 필요할지도.

이제 더이상 장이모에게 예술가 운운하면서 시비를 거는 것은 시체를 붙잡고 대화를 거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적어도 <영웅>이나 <연인>과 같은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는 상업영화에 있어서는 그렇다. 장이모를 놀리려는 말이 아니라, <영웅>을 제외하곤 장이모의 전작들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연인>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오직 상업성을 목적으로 했으므로 그 상업적 퀄리티, 즉 얼마나 관객을 두 시간 동안 쾌감의 혼수상태로 몰아넣느냐를 질문할 필요만이 있어 보인다.

때는 당조, 서기 859년. 화려했던 시절을 지나 쇠퇴기에 접어든 세상. 난세를 맞아 곳곳에서 반란의 세력들이 일어난다. 그중 하나가 ‘비도문’이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관군과의 전투에서 사살되었어도 그들의 세력은 더욱더 강화된다. 관에서 일하는 진(금성무)과 리우(유덕화)는 인근 유곽에 새로 나타난 기녀가 비도문의 일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덫을 놓는다. 그렇게 그들은 아름다운,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는 기녀 샤오 메이(장쯔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관가에 끌려온 샤오 메이가 고문을 당할 즈음에 어디선가 자객이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그러나 그건 도리어 그녀를 잡아온 진이다. 진은 사실 자신도 관에 앙심을 품고 있으며, 비도문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구출의 변을 늘어놓지만, 그 모든 것은 거짓말이다. 이후로 속고 속이는 함정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끝내 진과 메이는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놓고 갈등하게 된다.

<연인>은 때가 되면 한 가지씩 그 인물들이 말하지 않은 비밀들을 풀어놓으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그것이 성공적이질 못하다. 영화의 탄탄함을 끊어버리는 것은 반전을 시도하는 그 순간부터이다. 오히려 진과 리우와 메이의 삼각관계가 거짓과 진실의 망 속에 놓이기 전까지 영화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 그러다가 어떻게 저런 영화적 억지를 장이모 같은 장인이 놓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서사는 연관고리를 잃는다. 거창한 듯 비밀이 고개를 들 때마다 관객은 실소를 참지 못할 것이다. 오해 다음에 반전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그것이 과연 할리우드식 반전의 각본에 익숙한 관객에게 유용한 장치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거꾸로 말해 중국 관객에게 대성공을 거둔 것이 극장의 장악과 상업영화의 컨벤션에 대한 덜 발달된 더듬이를 이용했다는 것 말고 또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궁금해질 정도이다. 이 ‘반전의 구조’는 사실 <영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영웅>이 일종의 도식적인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다시 만들어내면서 기술상의 비논리성을 감추는 영리함을 갖고 있었다면, <연인>은 곧장 앞으로만 나아가면서 그 이야기들의 조각을 제대로 조립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고 만다.

장이모의 말처럼 이 영화가 “액션영화로 포장된 러브스토리”를 위한 것이었다면 왜 그 미세한 감성의 선을 쌓아 영화를 완성하려 하지 않았을까? 장이모의 이름 석자가 말해주듯, 이 영화에 참여한 스탭들의 명망이 보장하듯, 이미지만을 놓고 본다면 <연인>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 이외에 다른 표현이 불가능한 영화다. 온전하게 잡아내는 색의 섭리, 시대를 옮겨놓은 듯한 세트와 복식의 진귀함, 시적인 액션에 다다르는 무술, 그것들을 감싸는 풍경등에서 알 수 있듯 연인의 상업적 전략은 영화 자체를 ’이상적인 전시물’로 바꿔놓는 것이다. 예컨대, 리우와 진이 혈투를 벌이는 눈밭으로의 장면 전환은(장이모는 <연인>을 우크라이나에서 촬영했다. 예상치 않게 10월에 폭설이 내리자, 급하게 마지막 엔딩을 고치게 됐다) 갑작스럽지만 아름답다. 만약 더 박진감 넘치는 거대 활동 전시회를 열고 싶었던 것이라면, 반전을 버리고 이런 장면들을 믿어야 했었을 것이다.

:: <연인>의 화려한 스탭진

장이모를 돕는 7인의 사무라이

빌콩

정소동

에미와다

이른바 예술영화 감독에서 중국 상업영화의 일인자로 등극하게 된 장이모의 인적 네트워크는 놀라울 정도이다. 그 면면을 보면 화려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중 제작자 빌 콩을 첫 번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사실 퀄리티 높은 스탭들의 동원에는 빌 콩의 입김이 한몫했을 것이다. <와호장룡>을 만들어 화어권 영화로는 드물게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에드코필름의 대표 빌 콩은 <영웅>에 이어 <연인>을 중국 전역에 내걸었고 흥행 가도 또한 대단하다. 제작자 빌 콩 없이 <연인>이 지금의 스케일을 유지하기 힘들었으리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연인>에는 <영웅>에 참여했던 스탭들이 대다수 참여하고 있다. 그중 촬영을 맡은 자오샤오딩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자오샤오딩은 코카콜라, 아르마니 등 광고쪽에서도 인정받는 촬영기사이다. 그는 <영웅>에서 보여준 원색의 색감과 상상이 가미된 디테일(가령 허공을 가르는 물방울과 핏방울), 아름다운 자연풍광의 배경들을 이번 영화 <연인>에서도 확실하게 잡아낸다. 무술감독을 맡고 있는 정소동 역시 <영웅>에 이어 톡톡히 조력 역할을 했다. 정소동은 “당조에 맞는 무술을 연구했고, 감독의 영화에 맞도록 액션을 만들었다”고 장이모에게 공을 양보하기도 했다.

<영웅>에서 인물들의 몸을 휘감았던 아름다운 원색의 복식 창안자 에미 와다는 <연인>에서 그보다 더 화려한 복식을 선보인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으로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녀는 피터 그리너웨이와의 작업 등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첸카이거의 <현 위의 인생> <패왕별희> 등에서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았고, <시황제의 암살>로 칸영화제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미술감독 후오팅샤오의 실력은 영화 속에서 진과 리오와 메이가 각각 춤과 노래와 무예를 선보이는 유곽의 아름다움으로 증명된다. 또, 비록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만 들을 수 있긴 하지만 주제가를 부른 소프라노 캐서린 배틀의 목소리는 주인공들의 슬픈 사랑을 고색창연한 감정 안에 잠들게 하는 몫을 한다.

마지막으로 <연인>을 가장 잘 보필한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음악감독 시게루 우메바야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어떤 질과 상관없이 시게루 우메바야시의 음악은 그 자체로 감정을 실어나르는 데 손색이 없다. 음악만으로 따진다면 그가 맡았던 왕가위의 <화양연화>에도 버금갈 만한 수준이다. 이들 7명의 조력자들이 아니었다면 <연인>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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