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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접어든 베니스영화제, 파격과 전통의 조화
2004-09-06

중반 터닝 포인트 통과를 앞둔 제61회 베니스 영화제가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난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비난의 주된 내용은 장소만 옮겼을 뿐 할리우드와 다를 바 없다는 것. 영화제 안팎에서 스타 중심의 영화제에 항의하는 움직임도 있고, 경쟁부문 상영작 중 몇작품이 수준이하라는 혹평도 있지만 올해부터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신임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는 대중의 관심을 고조시켰고 비교적 고르게 수준이 높은 작품들을 초청했다는 호평도 듣고 있다. (사진은 개막작 <터미널>로 베니스를 찾은 스필버그 감독, 왼쪽 뒤편에 톰 행크스도 보인다)

영화제 개막 후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을 경쟁부문에 초청하는 파격을 시도한 것도 정체된 느낌의 영화제에는 활력을 주는 요소. 대거 참석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이들을 보려 몰려든 팬들의 함성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은 전례없이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칼렛 요한슨 기자회견 중 애정 고백 받아

"어쩔 수 없이 말해야겠습니다. 당신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톰 행크스, 톰 크루즈, 존 트래볼타, 덴젤 워싱턴, 스파이크 리 등 초반 영화제를 찾은 많은 스타가 사인 공세에 시달리고 있지만 노골적 애정 공세를 받은 배우는 스칼렛 요한슨가 유일했다. 한국 팬들에게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여주인공으로 알려진 스칼렛 요한슨은 영화제 심사위원과 비경쟁부문 초청작 <바비 롱의 러브송>의 주연 여배우 자격으로 베네치아를 방문 중이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영화제 이틀째인 2일 오전 <바비 롱의 러브송> 기자회견장. 칠레 출신이라고 밝힌 한 기자는 "당신은 실물이 영화에서보다 훨씬 예쁘다. 당신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사실 기자이면서 배우인데 혹시 같이 연기했으면 좋았을 법한 영화를 얘기해 줄수 있느냐?"고 물었고 장내는 이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 말문을 잃었던 스칼렛 요한슨은 곧 냉정을 되찾고 재치있는 답변을 건넸다. 그가 답변으로 말한 영화는 <위험한 독신녀>(Single White Female). 룸메이트가 스토커의 집착을 보이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내용의 공포영화다.

▶<아웃 투 시>, 호평

아직 절반 이상의 상영작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초반 상영작 중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아웃 투 시>(Out to Sea)와 유럽 영화계의 악동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고 있다. <아웃 투 시>는 민감한 문제인 안락사를 다룬 영화. 선원 출신으로 불구가 된 후 29년간 '자살할 권리'를 주장하다가 결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안락사를 한 실존 인물 라몬 삼페드로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작품 자체로 환호를 받은 것 외에도 영화는 최근 게이임을 밝힌 감독의 커밍 아웃과 <하몽하몽> 출연으로 섹시 스타 이미지가 강한 남자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 변신 등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밖에 별거 중인 부부의 다섯 가지 결정적인 순간을 역순으로 보여주는 도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을 연상시킨다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테러 위협, 영화제 일시 중단되기도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영화제 초반 폭탄이 숨겨져 있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한동안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의 배 터미널 운행이 중지되기도 했다. 한편 영화제 주상영관인 아르 데코 앞의 레드 카펫에서는 반세계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영화제가 거대 예산의 미국 블록버스터 위주로 꾸며졌고 티켓 값도 비싸다는 것. 영화제의 티켓은 8유로(약 9천300원)에서 30유로(약 3만4천900원) 정도로 일반 극장의 요금보다는 훨씬 비싼 편이다.

▶개막작 <터미널>은 함량미달?

개막작으로 상영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터미널>을 둘러싸고 현지 평론가들이나 영화제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처음 입을 연 사람은 영화제 개막을 석 달 앞두고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떠났던 디터 코슬릭. 그는 영화제를 앞두고 한 이탈리아 주간지 인터뷰에서 "<터미널>이 미국에서 개봉한 지 두달 이상이나 되는 등 개막작으로 맞지 않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으며 개막작 상영 후에도 비평가들은 "가식적이다", "현실성이 없다", "'감독이 9·11 이후 더욱 경직된 미국 사회에 대한 은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테러 공격에 대한 언급은 영화 어디에도 없다"는 식의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한국 영화 '그랜드 슬램' 이뤄낼까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이 경쟁부문(Venezia61)에서 상영되는 22번째 영화로 '깜짝' 선정됨에 따라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는 한국-홍콩-일본 합작 영화인 <쓰리, 몬스터>와 앞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권택 감독의 <하류 인생>까지 세 편이 됐다. 한국 영화의 상영은 6일 오전(현지시각) <쓰리, 몬스터>의 기자 시사회를 시작으로 잇따를 예정이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은 같은 날 밤 10시와 다음날 오후 7시 15분에 공개되며 <하류인생>은 폐막에 임박한 10일 기자회견과 공식 상영을 갖는다. 이례적인 깜짝 초청이나 거장의 이름 값에 대한 기대치를 더한다면 경쟁부문에 오른 두 한국 영화 중 수상작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그다지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이미 올 들어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과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한국 영화계가 베니스 영화제마저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면 한 해에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는 셈이다. 하지만 초반에 좋은 관객 반응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미야자키 하야오)과 <아웃 투 시>를 비롯해 거장 빔벤더스의 복귀작 <플렌티 오브 더 랜드>(Plenty of the Land) 등 쟁쟁한 작품과 경쟁해야 하는 만큼 일단 뚜껑을 열 때까지는 한국 영화 수상 가능성을 속단할 수 없다.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은 위원장 존 부어맨 감독과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 볼프강 베케르 감독, 스파이크 리 감독 등. 부어맨 감독은 영화제 개막과 함께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름다움(Beauty)과 긴장(Tension), 독창성(Originality)을 심사기준으로 삼겠다"고 말한 바 있다. 베니스 영화제는 11일 오후 수상작을 발표하며 폐막한다. (베네치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