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작품을 통해 곤 사토시 감독은 현실과 환상을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하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왔다. 이것은 단지 스토리뿐만 아니라 작업 스타일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돌의 율동을 로토스코핑으로 그려낸 <퍼펙트 블루>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다큐적 영상의 <천년여우>, 극도로 디테일한 멀티 레이어에 실제 로케이션을 배경화면으로 사용한 <동경대부>를 통하여 감독은 비현실적 제작방식인 애니메이션으로 현실적인 영상들을 담아왔던 것이다.
데뷔작에 이어 여배우를 다시 소재로 사용한 <천년여우>에는 오직 사랑하는 한 사람의 관객만을 위하여 70년간 연기를 펼쳐온 치요코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고 있자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보다 그 사연이 더 절절하다. 그녀의 사랑은 비현실적이지만 세상 어디에선가 꼭 존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끔 한다. <천년여우>는 그녀의 남자가 보름달보다 좋아한다 말했던 14일째의 달과도 같다. 완성없는 치요코의 사랑은 슬프지만 16일째를 맞이해야만 하는 보름달의 운명처럼 기울어짐이 없기에 아름답게 보인다.
한국어 채널이 담겼는데 일본어 5.1 채널로 감상하길 권한다. 다치바나 겐야 역을 담당한 성우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41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는 일본의 경우 고가의 한정판 DVD에만 수록되었던 것인데 치요코에 대한 실제 다큐처럼 정성스레 기획·제작되었다. 화질은 <퍼펙트 블루>보다 많이 향상되었는데 디테일감이 미세하게 떨어지는 것을 제외하곤 일본판과 차이점을 구분하기 힘들다. <천년여우>와는 달리,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기적들과 함께 보름달 마냥 꽉 찬 가족애를 보여주는 <동경대부> DVD도 곧 국내에서 발매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