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저자가 세상을 떠나고 50년이 지난 책은 저작권이 소멸된다. 그런 해외 도서는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18세기 영국 정치가인 필립 도머 스탠호프 체스터필드가 30년에 걸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1774) 출간된 〈Letters to His Son>이 있다.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사랑하는 아들아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지혜로운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47가지 삶의 길잡이’,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 인생은 이렇게 살아라’, ‘내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들아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아버지란다’ 기타 등등. 각기 다른 제목을 궁리하느라 애썼을 여러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이번에 나온 책은 1929년에 초판이 나온 영국 덴트판을 저본으로 완역한 것인데, 발췌 번역한 일역판을 우리말로 옮긴 중역본이거나 그 중역본을 짜깁기한 책들이 예전 번역서의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초 원본 완역이다. 영미권에서는 처세훈 도서의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는 책인데, 어디까지나 18세기 영국 귀족이 쓴 편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날에까지 적용시킬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책에 나오는 소제목들 자체가 훌륭한 격언이다. ‘지식은 닳지 않는 재산이다’, ‘호감 가는 말과 명확한 글은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다’, ‘풍족한 미래는 현재의 시간과 재산 관리에 달려 있다’, ‘친구는 너의 거울이다’,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은 없다’. 그 밖에도 체스터필드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안목을 길러야 하며, 자연스럽게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등 세상살이와 인간관계에서 요긴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논쟁 문화가 성숙되어 있지 못한 우리 현실을 새삼 돌이켜보게 만드는 그의 충고 한마디.
‘논쟁이나 다툼을 끝낼 때도 내가 기분이 상하지 않았고 당신의 기분도 상하게 할 뜻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간단한 우스갯소리를 덧붙이는 게 좋다. 논쟁을 벌이다보면 어느 정도는 서로 서먹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점에 능숙한 프랑스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보아라. 그들은 사교술이 뛰어나 본의 아니게 과격한 논쟁을 벌이더라도 언짢게 끝을 맺는 일이 없다. 이런 태도는 사안의 본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고 때로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이은주 외 옮김/ 지식경영사 펴냄]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