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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영화학도 미셸 휘르끄의 영화, 사랑 그리고 죽음 (+불어원문)

영화보다 영화같은 삶을 살다

폴-루이 티라르는 <포지티프>의 가장 오래된 비평가 중 한 사람으로 50년 동안 한결같은 열정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최근에 내게 <미셸은 과테말라에 남았다>라는 인물전기 한권을 선사했다. 우리 잡지 역사에서 신화적인 인물인 미셸 휘르크는 자신의 인생을 비평과 혁명에 바쳤다. 그녀는 열성 공산당원으로 1963년 쿠바에서 체 게바라와 합류하고, 그뒤 과테말라의 혁명군에 참여했다. 그리고 1968년 8월28일 미국 대사를 겨냥한 폭탄테러에 참여한다. 9월7일 과테말라 치안경찰들이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는 “갑니다, 난 가버릴 겁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그녀는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쐈다. 고문에 못 이겨 말하지 않도록 자살할 것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었다. 사망시 그녀의 나이 서른한살이었다.

이 전기의 작가 보리스 테르크는 숭고하고 부조리하며 분노와 희망으로 가득 찬 그녀의 행적을 묘사하면서 거기에서 영화가 차지한 자리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한다.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프랑스 영화 그랑제콜 IDHEC의 학생이었던 그녀는(거기에서 코스타 가브라스와 함께 수학했다)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는 그녀가 영화 같은 삶을 살았으며 정치적 참여를 넘어 자신의 인생 자체로 비극적 운명을 만들어냈다고 시사한다.

제이슨 로바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서 “우리 같은 자들은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라는 말을 통해 영화의 영웅을 정의내린다. 1940년대에 미셸은 자신의 곁을 스쳐간 죽음을 경험했다. 유대인인 그녀는 독일 군인을 피해 깊은 협곡에 몸을 숨겼다. 엄마 밑에 몸을 잔뜩 웅크렸던 그녀는 두 모녀 옆을 스치고 간 총탄의 기억을 평생 동안 지니게 되어 자신의 글에서 “그때의 공포가, 아직 내게 남아 있다”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30년 뒤, 과테말라의 치우다드에서 그녀는 또 다른 총탄을 자신의 입 안에 집어넣는다. 이번의 것은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고 군사 무력은 그녀를 체포할 수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가 떠나기 전 자신의 물건과 책들을 나누어주었다고 기억한다. 자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68년의 그 여름 끝무렵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며 자신이 가장 좋아한 영화 중 하나인 맨케비츠 감독, 에바 가드너 주연의 <맨발의 콘테사>의 시나리오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삶의 원을 매듭짓는다. 묘지에서 시작하여 묘지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자유로운 한 여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셸 휘르크, 그녀의 삶과 글은 그녀가 어떻게 영화를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 각종 대회의 상과 잡지의 커버표지엔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세미나, 영화제, 또 이런저런 수치들과는 상관없이 영화를 사랑했다. 그녀는 삶을 사랑하듯이 영화를 사랑했다. 즉, 열정적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Paul-Louis Thirard est l'un des plus anciens critiques de Positif. Depuis pres de cinquante ans, il ecrit sur le cinema avec la meme ferveur. Il m'a recemment offert une biographie : Michele Firk est restee au Guatemala. Figure mythique de l'histoire de notre revue, Michele Firk partageait son temps entre critique et revolution. Militante communiste, elle rejoint Che Guevara a Cuba en 63. Puis, elle s'engage dans les Forces Armees Revolutionnaires au Guatemala. Le 28 aout 1968, elle participe a un attentat contre l'ambassadeur des Etats-Unis. Quand le 7 septembre les forces de l'ordre guatemalteques frappent a sa porte, ils entendent crier : " je m'en vais, je m'en vais ! " Une seconde plus tard, elle se tire une balle dans la tete. A ses amis, elle avait explique qu'elle se suiciderait pour ne pas parler sous la torture. Elle avait 31 ans.

L'auteur, Boris Terk, decrit ce trajet grandiose, absurde, plein de fureur et d'espoir. Il tache aussi de comprendre la place qu'a pu y prendre le cinema. Ancienne eleve de l'IDHEC, grande ecole du cinema francais aujourd'hui disparue (elle y eut pour camarade Costa Gavras), elle aurait pu faire du cinema. Mais le livre suggere qu'elle fit de sa vie un film, qu'au-dela de son engagement politique, elle s'inventa un splendide destin tragique.

" Les gens comme nous ont quelque chose a voir avec la mort " dit Jason Robards, livrant dans Il etait une fois dans l'Ouest une definition du heros de cinema. La mort effleura Michele au debut des annees 40 : juive, elle se cache d'un soldat allemand au fond d'un ravin. Blottie sous sa mere, elle gardera toute sa vie l'image du canon qui les frole : " c'est reste en moi. La peur " ecrira-t-elle.

Trente ans plus tard, a Ciudad de Guatemala, elle s'enfonce un autre canon dans la bouche. Celui-la, elle l'a choisi et l'autorite militaire ne la rattrapera pas. Ses amis se souviennent qu'avant de partir elle avait distribue ses affaires et ses livres : elle savait qu'elle ne reviendrait pas. Appuyant sur la detente en cette fin d'ete 68, elle referme donc le cercle parfait de sa vie, parfait comme le scenario de l'un de ses films preferes : La comtesse aux pieds nus de Mankiewicz, qui raconte en flash-back la vie d'une femme libre interpretee par Ava Gardner… un film qui commence et finit dans un cimetiere.

Michele Firk, sa vie, ses textes, racontent une certaine facon d'apprehender le cinema. Elle n'avait que faire des palmes et des couvertures de magazines. Elle aimait le cinema loin des colloques, des ceremonies et des chiffres. Elle aimait le cinema comme elle aimait la vie : passionnement, jusqu'a la mort. Adrien Gombeaud (Critique et journaliste a Positif)

번역 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