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독립군 기지에서 일본군이 우리 민족에게 학살을 자행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단도직입적으로 이토 히로부미(윤주상) 암살에 성공한 안중근(유오성)이 일본 형사(정성모)에게 취조를 받는 장면으로 뛰어든다. 이후 보여지는 도마 안중근의 과거(삼흥학교 설립, 의병운동 참가, 단지동맹 결성, 그리고 1909년 하얼빈 거사)는 대략 이 시점에서 전개되는 플래시백. 영화는 간혹 회상의 주체가 급작스럽게 뒤바뀌기도 하면서 별다른 맥락이 없는 ‘점프신’으로 연결된다. 빈번하게 끼어드는 내레이션과 자막은 TV사극보다도 설명적이고 미술은 허술하며 엑스트라들은 재현드라마 속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 최대의 착오는 안중근의 캐릭터 묘사방법. 예를 들면 이렇다. 쌍권총을 든 해결사 안중근 의사, 노천카페에서 저격수들의 습격을 받는다. 격전의 와중에 그의 총알이 다 떨어진다 해도 걱정은 금물. 일단 사살해놓은 옆건물 2층의 저격수 손에서 떨어지는 권총을, 총알이 빗발치는 대로를 유유히 걸어온 그가 잽싸게 받아들고 다른 건물에 있던 적들을 명중시키고야 만다. 민족의 영웅이 졸지에 재미없는 홍콩영화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 교육자, 아버지, 독립군의 고참, 서예를 즐기는 선비 등 영웅 안중근에 대한 설명은 실로 다양하고 장황하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마지막까지 “이것이 진짜 안중근”이라는 대답을 듣지 못한다. 숨가쁘게 앞으로만 나아가는 영화의 주인공은, 종잡을 수 없는 역사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각종 인물과 사건, 심지어 제작의도까지 자막으로 설명하는 이 영화는 대단히 진기한 작품이다. 시종일관 진지한데 그 진지함 때문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어쩌면 올해 최고의 코미디영화로 기록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