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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우체부가 전하는 ‘시적 세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이 책은 재미있다. 160쪽 정도의 분량이 한 호흡에 읽힐 정도니 어지간히 재미있다고 해도 좋겠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El Cartero De Neruda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민음사 펴냄)라는 제목을 듣고 ‘이게 무슨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영화로 만들어진 <일 포스티노>를 떠올리면 쉽겠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칭송한 파블로 네루다라는 천재적 시인과 어느 시골 우체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어느 무명의 저널리스트의 회고로 시작한다. 1970년대 초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에는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인 마리오 히메네스가 있다. 마을의 처녀 베아트리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소녀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조른다. 네루다의 도움으로 사랑에 성공한 우체부는 결혼하기에 이른다. 이후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이슬라 네그라를 떠나 있을 때,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에 있는 동안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연을 이어간다.

작가인 스카르메타는 “이 세계에서 자신만의 시적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을 통해 ‘메타포’에 대해 배우는 시골 우체부, 그리고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한다. 네루다의 시 낭송을 듣던 순박한 우체부가 “이상해요. 시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시를 낭송하시는 동안 제가 이상해졌다는 거예요”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술에 관한 순수한 감동의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칠레의 숨가쁜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결말은 소설이 간직하고 있는 숨겨진 의도, 즉 이야기 구성의 묘미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네루다의 작품 세계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미 소설의 재미에 대해 새롭게 인식시킨다는 점에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다시 한번, 추천할 만한 소설이다. 작가 스카르메타는 동화와 영화 시나리오,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썼다. 우리말의 섬세한 어감을 살리기 위한 역자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한 가지 추가하면, 우체부가 멀리 떠난 네루다에게 마을의 온갖 소리, 그러니까 파도소리와 아기 울음 등을 정성스레 녹음해서 소포로 보내주는 것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 상기시킨다. 우정이라고 불리는 것.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