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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거대한 거짓말 같은 멜로, <거대한 강박관념>

<거대한 강박관념>

Magnificent Obsession 1954년

감독 더글러스 서크 출연 록 허드슨

EBS 8월22일(일) 오후 2시

같은 지면을 통해 더글러스 서크의 영화 <바람에 쓴 편지>(1957)와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1956) 등을 소개한 적 있다. 더글러스 서크의 영화는 어떤 면에선 논쟁의 여지도 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평범한 TV드라마처럼 보이는 구석도 있고, 어떤 견지에선 스타일이 살아 있는 빼어난 장르영화로 평가받기도 한다. 원래 독일 출신인 서크 감독은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 중 하나로 꼽힌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로 이른바 ‘여성용 최루’ 장르를 개척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럼에도 이후 비평가들은 서크 영화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것, 예컨대 당대 미국사회에 관한 은유적 비판을 감지하기도 했다.

<거대한 강박관념>은 언뜻 줄거리가 기이해 보인다. 방탕한 부잣집 자식이자 바람둥이인 밥 메릭. 밥 메릭은 어느 날 젊은 혈기로 고속 모터보트를 몰다가 사고를 당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구조활동이 벌어지는 동안 필립 박사가 사망한다. 밥 메릭은 유족인 헬렌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려 헬렌을 찾아가지만 헬렌은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그 결과 실명하고 만다. 시력을 잃고 절망한 헬렌에게 밥은 로빈슨이라는 가명으로 접근하여 위안이 되어주려 노력한다. 밥은 헬렌과 함께 스위스로 간 뒤, 그곳에서 중단했던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거대한 강박관념>은 어쩌면 채플린의 영화 <시티라이트>를 연상케 할지도 모른다. 앞을 볼 수 없는 여성과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만나고 재회하는 과정은 다른 어느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우연이 겹친다. 밥 메릭이 당하는 사고, 그로 인한 누군가의 죽음, 헬렌의 시력 상실 등이 별다른 개연성 없이 계속 겹치면서 플롯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의 강박적이라 할 만큼 깊이 연관되는 밥과 헬렌의 관계는 어이없을 만큼 운명적인 탓에 기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이에게 역설적으로, 밥과 헬렌 사이에 흐르는 희생과 신념의 모티브가 적절한 것인지, 그리고 당시 미국사회의 가치관이 얼마나 큰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지 반문하도록 하는 것이다. <바람에 쓴 편지> 등이 그렇듯, 서크 영화의 핵심은 풍요로운 스타일과 색채감에 있다. <거대한 강박관념> 역시 다르지 않은데 꽃과 풍경, 유리창 등의 배경과 소품이 영화 줄거리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본다면 의외로 흥미로운 볼거리가 적지 않다. 예컨대, 헬렌이 실명하는 과정이라는 사건을 전후로 해 소품이 화면에서 어떻게 등장하고 배치되고 있는지 본다면 말이다.

<거대한 강박관념>은 다수의 서크 영화가 그렇듯, 모호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밥은 의학 공부에 전념해 유명한 외과 의사가 되고 헬렌은 중태에 빠져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헤매다가 다시 살아난다. 연인들의 사랑은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맞게 된다. 운명의 장난, 이라 해도 좋을 만큼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유희를 벌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거대한 강박관념>은 한편의 매우 그럴듯한 거짓말처럼 꾸며내고 있다.

김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