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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땅’의 신화와 역사, <실마릴리온>

‘태초에 요정들의 말로 일루바타르라고 불리는 유일자 에루가 자신의 생각으로 아이누들을 만들었고, 그들은 그의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였다. 이 음악으로 세상이 시작되는데 일루바타르는 아이누들의 노래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했고, 그들은 어둠 속의 빛을 보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의 많은 이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했고, 환상 속에서 시작되어 전개되는 그 역사에 매료됐다. 그리하여 일루바타르는 그들의 환상에 존재를 부여하여 공허 속에 위치시키고, 그 세상의 중심에 비밀의 불을 보내어 타오르게 했고, 그 세상을 에아라 불렀다.’

<실마릴리온>에서 유일자를 대리하는 신들인 발라에 관한 이야기인 ‘발라퀜타’의 첫머리에 나오는 태초에 관한 이야기, 눈으로 볼 수 있는 환상의 음악이 존재가 되고 역사가 되어 시작되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반지의 제왕>에서 2년에 걸쳐 진행된 ‘반지 전쟁’ 이야기는 2만년이 넘는 세월에 걸친 이야기인 <실마릴리온>에서는 두쪽 분량이다. 상상력의 스케일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톨킨은 ‘가운데 땅’의 태초로부터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지는 요정들의 역사, 신화, 계보를 기록한 이 대서사시를 56년에 걸쳐 집필했다.

<실마릴리온>의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퀜타 실마릴리온’의 틀은 이렇다. 모든 존재의 운명을 지배하는 위대한 보석 실마릴이 있었다. ‘반지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 ‘발라들의 땅’을 비추던 두 그루의 나무가 최초의 암흑 군주 모르고스에 의해 파괴된다. 나무들의 빛이 봉인된 보석 실마릴도 모르고스가 차지하고 만다. 잃어버린 보석을 되찾기 위한 기나긴 전쟁이 시작된다. 그 밖에 창조에 관한 이야기 ‘아이눌린달레’, 이미 언급한 ‘발라퀜타’, 탐욕 때문에 잃어버린 왕국이 되어버린 누메노르 왕국에 관한 이야기 ‘아칼라베스’, 반지 전쟁 전과 후의 세상에 관한 이야기 ‘힘의 반지와 제3시대’ 등이 실려 있다. 톨킨의 다른 작품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무수한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의 연원과 맥락을 퍼즐을 맞춰나가는 듯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다른 작품들로 나아가기 위한 실마리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톨킨이 창조한 언어 발음 규정, 요정어를 분석한 ‘퀘냐와 신다린 이름의 구성 요소’ 등을 수록한 100여쪽 분량의 부록이 충실한 편이며, 별지에 실린 주요 등장인물 가계도와 각 요정족에 대한 설명, 관련 지도 등도 요긴하다. [J. R. R. 톨킨 지음 | 김보원 옮김 |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펴냄]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