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모성애의 판타지를 거둔 <인어공주>의 미덕을 환영하다
모성애의 판타지는 막강하다. 우리는 여전히 자식을 버린 아버지보다는 자식을 떠난 어머니에게 가혹하다. 자식을 까먹은 아비에게 붙는 레테르는 ‘무책임’, ‘나약함’ 정도에 그치지만 모성을 끊어낸 여성에게 새기는 꼬리표는 ‘잔혹한’, ‘비정한’ 등의 서늘한 주홍글씨다. 동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튼실하게 건축된 모성애의 내러티브 속에서 어머니들은 자신의 무게의 몇 십배가 넘는 트럭을 너끈히 들어올리고 목숨 ‘따위는’ 초개같이 팽개치곤 한다. 저널리즘은 여전히 이러한 ‘엽기스릴러’를 아름다운 수사학으로 갈무리하여 ‘미담’으로 엮어내곤 한다. 생태계 전체를 굽어보더라도 인간만큼 비효율적이고 획일적으로 모성을 관리하는 종족은 없는 것 같다. 개미는 무시무시한 규모의 공동육아에 도가 튼 종족이지 않은가. 갈매기는 일단 유전자가 ‘실한’ 수컷과 짝짓기를 한 뒤 살림은 ‘맘에 드는 암컷끼리’ 차리는 경우도 많다.
모성애의 ‘판타지’, 바로 그것이다. 모성애는 판타지의 갑옷을 입은, 실체없는 이미지이자 이데올로기다. 성교육은 모성의 문법과 매너만을 가르칠 뿐 모성을 발휘하기까지 얼마나 혹독한 훈련과 의혹과 공포와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작가 전혜린은 40여년 전 이미 모성애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본능이 아님을 입증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이를 원하고 있지 않았다. 또 한개의 가공적 존재를 이 세계 속에 내던진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무모나 경솔로 생각되었다.” “때때로 뱃속에 무엇이 들어가 있을지-개구리나 오리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스꽝스런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한 것은 “내가 과연 미래의 내 아이에 대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아이를 사랑한 뒤에도 그녀는 자신의 모성을 의심한다. “내가 아이에게 품은 감정도 모성애라기보다는 면밀한 호기심과 관찰 의욕과 감탄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다.”(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영화 <인어공주>의 미덕은 판타지의 의상을 입고 있지만 정작 ‘모성의 판타지’가 없다는 점이다. <인어공주>는 ‘모성’이 아니라 ‘어머니라 불리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모성은커녕 여성성조차 거세당해 생활에만 집착하는 어머니. ‘착한 것이 밥먹여준다냐, 니 애비를 봐라’는 악다구니를 달고 사는 현재의 어머니와 ‘사람이 착한 것이 젤이지, 암만유’라고 외치는 과거의 어머니 사이에는 소름끼치는 시간의 간극이 가로놓여 있다.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어머니 뒤에는 한톨도 변하지 않은 아버지가 웅크리고 있다. 아버지의 죄가 있다면 무수히 탈바꿈하는 시간의 얼굴을 한사코 외면한 채 그저 순하디 순하게 타인을 믿어온 착함뿐이다. 그러나 부모를 증오해 마지않던 딸은 엄마 아빠의 과거를 여행한 뒤에야 깨닫는다. 차라리 고아이길 꿈꾸는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린 욕망, 따뜻한 모성과 부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스위트홈’의 꿈이야말로 엄마 아빠가 항상-이미 품고 있던 어여쁨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 육중한 장애물이었음을.
시트콤 <프렌즈>에는 다양하다 못해 얼토당토않은 모성이 범람한다. <프렌즈>에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엄마, 독신의 몸으로 대리모의 삶을 택한 딸, 아버지와 이혼하고 레즈비언과 동거하는 엄마, 친아빠의 죽마고우와 버젓이 연애하는 엄마, 아들의 친구와 키스하고 입을 쓱 닦는 엄마, 아버지의 외도를 눈감아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하는 엄마가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엄마들 앞에서 그들 역시 고뇌한다. 그러나 <프렌즈>의 매혹은 이 ‘콩가루스러운’ 상황을 웃음의 언어로 고동치게 하는, 못 말리는 명랑성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는 참 기상천외한 엄마들이 많다는 ‘평범한’ 진리 이전에, 모성을 말하는 태도와 수사학의 변화다. 부디 심각한 얼굴로 모성의 결핍을 ‘부도덕’이나 ‘질병’으로 치부하지 않기를. 모성을 어머니에게만 짐지울 것이 아니라 삼촌과 친구와 옆집 언니가 함께 나누길. 그리하여 모성 결핍에 시달리는 버려진 아이도, 모성 결핍에 죄책감을 느끼는 가여운 어미도, 스스로의 사랑의 능력을 침묵시키지 않기를.정여울/ 미디어 헌터 suburb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