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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면 몸이 아닌 마음을 느낀다”
2004-08-05

파격변신한 <얼굴없는 미녀>의 김혜수

김혜수(34)가 벗었다는 건 분명 화제였다. 평소 과감한 패션 스타일을 선보여왔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가 야한 의상을 입었던 적조차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사회가 열리기 전 사람들의 관심은 어쩔 수없이 그의 '노출'에 있었다. 드디어 영화 <얼굴없는 미녀>(감독 김인식, 제작 아이필름)의 뚜껑이 열렸다. 시사회 등을 통해 미리 작품을 본 관객은 그의 몸이 아닌, 그가 보여준 연기에 빠져들었다. 낯선 느낌, 강렬한 화면, 몽환적인 분위기. 뭔가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지만 결국은 '내 속의 뭉클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는 말을 고백처럼 털어놓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과거 속에 묻혀사는 여인과 그를 치료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정신과 의사의 의식 흐름을 좇아간다. 영화 촬영 내내 초긴장 속에서 살았다는 김혜수를 만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상당히 철학적이거나 아니면 너무나 리얼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자살'이라는 소재를 풀어낸 영화 <로드 무비>를 찍은 감독이 시나리오를 줬을 때 내 마음은 이미 기울었다. 그런데 막상 크랭크인을 하고 보니 내 생각과 감독의 생각이 달랐다. 난 '경계성 성격 장애'란 병을 앓고 있는 지수를 화장기없는 창백한 얼굴에 가라앉았지만 흩어진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여자로 설정했다. 그런데 감독은 달랐다. 짙은 화장,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야한 의상. 잘못하면 멋부리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또 '김혜수란 배우는 이미 강렬한 이미지인데 이렇게 화려한 외모는 비주얼로만 승부하는 셈이 되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난 할 수 있다

회상 장면을 촬영한 후 첫 장면, 지수가 무섭게 글을 쓰고 있는 장면부터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과거에 집착하며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지수를 서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튀는 의상과 스타일은 세상 속에 묻혀살지 못하는, 그래서 현실 공간에서 돌출되는 지수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드러낼 것이라는 감독의 생각을 가슴으로 수긍하게 되면서 연기가 풀렸다.

내가 빠져들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외로웠나, 내가 그렇게 고독했나.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 스스로도 명료하지 않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숱한 이미지 속에서 배우로서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수많은 생각들이 촬영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난 빠져들었다

결국 영화는 '소통'의 문제다. 결코 말로 풀어낼 수 없는 문제들을 누구나 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 그렇다. 다만 익숙했던 표현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다. 보는 이들도 그럴 터. 스토리를 좇아가는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의 구현으로 심리를 표현해내기에 조금은 어색하겠지만 보고나면 나처럼 "어떻게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해된다"고 속삭일 것 같다.

내가 벗을 수 있을까

만약 5년 전에 이 시나리오가 들어왔다면 십중팔구 안 했을 것이다. 이 나이에 접어든 인간으로서, 연기자로서 김혜수이기에 시도할 수 있었다. 그래도 최면 속에서의 섹스신, 욕조 속에서 섹스신을 어떻게 보여야 하나.

난 벗었다

태우씨가 내 벗은 몸 위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은 그지없이 슬펐다. 이처럼 벗은 몸이 어떻게 표현되느냐가 중요하다. 누드 촬영을 하는게 아니지 않은가. 과거의 남자와 하는 사랑이 담긴 섹스와 과거의 남자로 착각하며 벌이는 섹스는 당연히 다르다. 그게 표현됐다.

긴 인터뷰 내내 김혜수는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숨기려 해도 연기자로서 뿌듯한 표정이 묻어나왔다. 왜 그가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채 담아두고 있던 내면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매니저가 올 겨울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인어공주>의 전도연과 각종 시상식에서 경쟁을 벌여야 되는 것 아니냐(김혜수와 전도연은 같은 소속사다)"라고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그의 대답이 재치있다. "얼굴도 없는 내가 1인 2역을 한 도연이에게 경쟁이 되겠어요. 그러길래 도연이더러 '언니(김혜수) 모처럼 영화하니까 쉬엄쉬엄 연기하라'고 했더니 그냥 저 하던 대로 하대요."(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