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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이미지들로 엮은 파괴적 사랑의 순간, <얼굴없는 미녀>

유리처럼 부서져내리는 사랑과 애욕의 취약함을 내러티브 대신 매혹적인 이미지들로 엮다

치유불가능의 상처를 가지고 농락하면 용서받지 못한다. 20여년 전 방영된 TV형사물의 납량특집 <얼굴없는 미녀>가 남겼던 ‘교훈’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최면요법은 환자의 깊은 내면과 만나 고통의 근원을 식별하고 제거하려는 수술도구일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그걸 욕정의 해소 수단으로 삼았다. 최면암시를 걸어두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아름다운 환자를 오게 만들어 몸을 탐했다. 여느 때처럼 불시에 신호를 받은 환자는 육신의 주인에게 향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환자는 혼의 몸이 되어, 원귀가 되어, 명령을 이행하려고 한다. 이제 의사는 자신이 만들어낸 원귀에게 쫓겨야 하는 끔찍스런 처지에 빠진다.

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는 이런 사필귀정, 일벌백계의 호러 리메이크가 아니다. 환자 지수(김혜수)는 물론이고 의사 석원(김태우)에게 감당하지 못할 상처와 사연을 비슷하게 안겨주고 절대고독에 빠진 그들끼리 또 한번 물고 물어뜯게 만든다. 석원은 가해자이기에 앞서 슬픈 영혼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지수는 피해자이기에 앞서 미쳐갈 수밖에 없는 슬픈 사랑의 포로이어야 한다. 그들을 둘러싼 관계들 역시 그 연쇄망의 한 고리를 꿰어야 한다. 석원의 아내와 또 다른 환자들, 지수의 남편과 옛사랑이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례로 나서서 모질고 처참한 비밀의 순간들을 연출해야 한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은 충족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고, 다만 서로를 파괴할 뿐이다. 영화는 그 파괴의 순간들을 길고 긴 미스터리로 엮어내려고 한다. 그러니 옛 TV드라마의 에로틱한 공포를 기억하거나 기대하는 이들에게 이 사연들은 너무나 긴 도입부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넋두리다. 거꾸로 감독에게는 TV드라마의 단순한 공포 구도가 사랑의 이기적, 일방적 행로를 끌어가는 모티브이자 마침표일 뿐이다. 이 간극은 너무 멀어 ‘화해’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먼 거리를 메워줄 수 있다면, 그건 매혹적인 이미지들이다. 단락조차 없이 빼곡한 소설 쓰기로 영혼의 불안과 갈증을 해소하려고 하는 지수의 안간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오는 정신분열의 위기. CG를 활용한 이 첫 시퀀스는 소름끼치게 매혹적인 이미지의 연속이다. 이 이미지가 위태로워진 석원에게도 똑같이 반복되지만 그 위력은 시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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