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our Par Terre
1984년, 감독 자크 리베트 출연 제인 버킨
<EBS> 6월16일(토) 밤 10시
“고다르가 이론적이며 기호학적인 정치가라면 자크 리베트는 실험가다.” 제임스 모나코의 언급은 자크 리베트 감독에 대한 설명으로, 짧지만 유용하다.
<카이에 뒤 시네마> 시절의 자크 리베트는 카리스마 넘치는 비평문을 제출해 다른 누벨바그 감독들조차 범접하지 못할 인문학적 교양을
과시하곤 했다. 문학과 음악, 그리고 상업광고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관심분야는 당연히 그의 영화에도 반영되고 있다. 리베트의 영화는 흔히 ‘과정’의
내러티브를 지닌 것으로 정의된다. 인물들이 일정한 창작작업에 참여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담고 있으므로. 그의 영화에선 연극이 주무대인 작품이
많은 편인데 실제 연극이 상연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배우들이 모여, 연극이라는 행위에 몰두하는 과정이 더 중시되는 것이다. 자크 리베트
감독은 실제 배우들과의 공동작업에 많은 의미를 둔다. 배우의 즉흥연기를 응용하면서 내러티브를 확장하고, 영화의 허구성을 노출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얼핏 자크 리베트 영화는 상영시간이 길고 다소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에릭 로메르가 그렇듯, 자크 리베트 감독은 세월이
흐를수록 자신만의 방식과 스타일을 견고하게 응축해가는 노장이다.
<지상의 사랑>도 연극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두명의 여성이 극을 주도한다는 점에선 전작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1974)를
연상케 한다. 에밀리와 샤를로트는 코미디를 일상처럼 가장해 아파트에서 공연하는 배우들이다. 에밀리와 샤를로트는 관객들을 복도에 세워놓고 공연을
벌이곤 한다. 연출가 클레망은 집에서 공연할 연극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초대한다. 여기엔 폴이라는 마술사도 있다. 그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클레망과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초반부터 영화는 돌발적이다. 에밀리 일행이 아파트에서 공연할 때, 관객 몇명이 실내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때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면서. 스크린상으로 배우와 관객의 구분은 더이상 무의미하며 영화매체의 관음적 속성이 폭로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장면이 TV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는 거다. 영화의 본질을 슬쩍 은폐하면서 TV매체에 관해 짓궂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만드는 얄팍한 ‘환상’이란 결국 이런 거 아니냐, 는 식으로. <지상의 사랑>은 연극과 픽션에 관한 의미심장한 비유를 곁들인다.
에밀리와 샤를로트가 공연하는 연극은 실은 클레망과 폴의 과거와 관련있으며, 이들 욕망을 어느 정도 현실화하고 있다. 이를테면 못다 이룬 사랑의
쟁취 같은 것. 연극과 관련된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에 맞춰 연극을 변형하려고 애쓰는데 그 모습이 환상의 세계에 갇혀버린 이들을 빗댄 풍자로
읽힌다.
어느 평자가 지적했듯, 자크 리베트 감독의 영화는 ‘픽션의 집’과 같다. 영화구조뿐 아니라 인물들의 대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여성이 기이한
‘허구의 집’으로 향하는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에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모티브가 되었듯, <지상의
사랑>에선 중남미권 문학 등 여러 문학텍스트의 영향이 감지된다. 자크 리베트 감독은 <지상의 사랑>에서 영화와 연극, 문학의
근친관계, 그리고 영화매체의 허구성에 관한 중언부언을 멈추지 않는다. 장황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일관된’ 창작 의지를 지닌 감독은
정말 드물다. 김의찬|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