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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인권영화 프로젝트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촬영현장
사진 오계옥이영진 2004-07-26

국가의 부름을 받고 레디, 액션!

“내가 그렇게 잘 못 살았나?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나, 세상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아요. 남들 놀 때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왔고, 지들 한눈팔 때 앞만 보고 달려서 나름대로 이 나이에 잘 나간단 소리 듣고 살아요. 기집년들이야 남자 하나 물면 그만이지만, 남잔 그게 아니잖아.”

만취해 눈은 풀리고 혀는 꼬인 한 남자. 포장마차에서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다. 그와 함께 2차에 들른 친구들은 어찌된 일인지 모두 집에 가버렸다. 술에 곯아떨어진 건장한 두 남자(?)를 옆 테이블에서 발견한 그는 술집 종업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옮겨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한국사회에서 남자이기에 짊어져야만 하는 수많은 책임과 의무를 그가 줄줄이 열거하는 동안 머리를 처박고서 잠자코 있던 두 남자(?)는 과연 동류의식을 느끼고 박수를 보낼까.

7월11일, 강남의 한 포장마차에서 촬영이 이뤄진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는 두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 중 하나. 박찬욱, 박광수, 여균동, 임순례, 정재은, 박진표 등 여섯명의 감독들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던 <여섯개의 시선>에 이어 올해는 류승완, 박경희, 이재용 등의 감독들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신작 <주먹이 운다>(가제) 제작 일정 때문에 일찌감치 <남자니까 아시잖아요>의 촬영을 시작한 류승완 감독은 리허설에 들어가기 전 “이현승 감독님이 국가의 부름이니 군대간다는 생각으로 임하라고 해서 하게 됐다”는 너스레로 인사를 대신한다.

15분짜리 단편으로 촬영은 고작 2회이지만,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촬영장은 대규모 폭파장면을 앞둔 블록버스터영화의 현장처럼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전체 극이 단 두개의 컷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카메라는 쉼없이 계속 돌아가고, 배우 또한 긴장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우식 역의 김수현은 분장을 하면서도 소주병을 놓지 않은 채 대사를 중얼거릴 정도다. 류승완 감독 또한 정작 리허설에 들어가자 대역 연기를 하고 있는 스탭들에게 “너희 대본은 안 보냐?”라고 면박을 주며 축축하고 습한 촬영현장에 냉기를 불어넣는다. 2시간 넘는 리허설 끝에 밤 10시께 시작된 촬영은 “대사 템포가 너무 늘어져. 강약 리듬도 더 넣어야 하고”라는 류승완 감독의 조언이 더해지면서 8번의 테이크 끝에 새벽 1시가 돼서야 막을 내렸다.

극중 우식은 “기집년들이 몇시인데 술처먹고 있냐”고 젊은 여자손님들에게 삿대질하고, “언제부터 우리가 블랑카 애들하고 같이 술마셨냐”고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고, 급기야 친구들에게까지 시비를 거는 막돼먹은(?) 인간. 류승완 감독은 “피해자 대신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식은 무의식 중에 내 모습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 내복을 입어서도 안 된다, 뭐 이런 식의 교육을 받고 자라잖아요. 그게 성인이 돼서 누군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타나는데 그런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렇다 해서 가해자를 영화가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류 감독이 말하는 “<식스 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은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라는 우식의 호소에 일침을 놓는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를 포함한 두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는 올해 안에 제작을 모두 마친 다음, 내년에 관객과 만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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