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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저예산영화 찍기 집중 탐구

“촬영은 1번뿐” 액션도 컷도 전투처럼

모든 영화 촬영 현장에 있지만 김기덕(44) 감독의 작품 현장에는 없는 것. 감독 의자다. 등판에 영화 제목과 감독 이름이 새겨져 있는 감독 의자는 감독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자 현장의 중심점이 되는 자리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늘 서 있다. 그에게 감독 의자는 불필요해 보인다. 보통 감독들이 의자에 앉아 진득하게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찍고 다시 찍고’를 반복하는 동안 그는 이미 컷에서 컷으로, 장면에서 장면으로 재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섬〉(1999) 〈수취인불명〉(2001)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나쁜 남자〉(2002) 〈사마리아〉(2004)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그리고 2004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 한국 감독 중 세계 3대 영화제에 가장 많이 진출한 김 감독의 촬영 현장은 이처럼 감독 의자 하나 없는 소박한 풍경이다.

7월20일 마지막 촬영 현장이 공개된 〈빈집〉에서도 그는 서서 ‘액션’과 ‘컷’을 외쳤다. 올 베니스영화제에서 완성되지도 않은 그의 새 영화를 위해 경쟁부문의 자리 하나를 비워놓았다는 소문이 충무로에서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도 “리허설 한 번, 촬영 한 번입니다”라는 그의 원칙은 수정되지 않았다.

외출하고 돌아온 선화(이승연)가 폭력적인 남편에게 추궁당하는 장면에서 여주인공 이승연씨가 피식 웃어버렸다. “이승연씨 필름값 물어내시고 다시 액션!” 특별한 주문 없이 간결하게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속도전’으로 영화 찍는 감독의 초조함이 아니라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이 엔지로 ‘촬영 한번’의 규칙이 살짝 깨지기는 했지만 이날 평창동의 고급주택 마당에서 찍어야 할 5장면이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완성됐다.

새영화 <빈집> 총비용 10억‥의자 앉을 틈도 없이 ‘속전속결’

제작·감독·배급 1인3역‥“관객 적어도 제대로 소통하고파”

김 감독의 11번째 연출작인 〈빈집〉은 빈집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남자가 우연히 들어간 집에서 남편의 가학적인 집착으로 고통받으며 사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예상하겠지만 아름다운 로맨스는 아니다. 함께 빈집을 찾아다니게 된 두 사람이 우연히 버려진 노인의 주검을 발견하면서 남자는 납치·살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둘은 각각 다른 처지에서 생의 막다른 골목에 놓이게 된다. 누드화보 스캔들로 활동을 접었던 이승연씨 캐스팅으로 시끌시끌했던 세간의 호기심을 배반하려는 듯 촬영 현장은 매우 차분했고, 작품 역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나 〈사마리아〉처럼 차분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빈집〉의 전체 촬영 횟수는 13회(촬영 일수 19일). 총제작비는 10억원이다. 저예산의 기준이 20억~30억원대로 올라간데다 국외에서 선사한 권위 덕으로 원한다면 몇십억원 정도는 투자받을 만한 여유가 생겼지만 김 감독은 여전히 궁핍하고 급박한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어렵사리 끌어들인 3억5천만원으로 1996년 첫 영화 〈악어〉를 찍을 때는 이것이 생존방식이었겠지만 이제는 ‘김기덕식 영화찍기’라고 불러도 과해 보이지 않는 그의 ‘철학’이자 ‘습관’이다.

트랜스 제작 공장에 다녔던 10대 시절 하루 60개 생산하던 기계를 직접 다시 만들어 하루 2300개로 증산시킨 덕에 최연소 공장장이 되기고 했던 그는 속전속결의 추진력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붙은 습관이라고 말한다. 현장에 나와서 그린 콘티를 촬영, 조명 등 제작진들에게 나눠주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 그의 스타일이 “제작진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나쁜 방식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감독은 독단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마리아〉 때 ‘김기덕필름’을 설립해 감독 외에 제작자라는 직함을 가진 그는 〈빈집〉에서 배급자라는 직함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만큼 일이 더 늘어났지만 본인의 영화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챙겨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데다 마케팅을 이유로 영화가 왜곡된 내용으로 홍보되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란다. “극장수가 많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 영화의 관객은 10만명 안짝이고 여기서 몇천명 늘어나는 정도가 현실적인 기대 수치다. 수가 적더라도 제대로 영화를 이해하는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감독으로 가장 큰 바람이다.”

데뷔 8년에 11편의 작품목록과 4편의 3대 영화제 본선 진출이라는 재산은 그에게 자부심도 위안도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전쟁처럼 영화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전투태세’로 감독으로의 삶을 그리고 작품목록을 채워갈 것이다.

김기덕 감독 인터뷰

“촬영은 1번뿐” 액션도 컷도 전투처럼

투자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작품에 대한 권리 자본으로

몇년 전 언론의 ‘오해’와 비평가들의 ‘인신공격’에 지친 그는 인터뷰 거부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오해나 불신 때문에 소통을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빈 집>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영화에 대한 인터뷰 내용은 쏙 뺀 채 당시엔 확정되지도 않았던 이승연 캐스팅 이야기를 결정된 것처럼 보도했던 스포츠 신문 기사에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그는 여전히 영화로 이해받기를 원했다. 22일 <빈 집> 후반작업이 한창인 김 감독과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빈 집>은 올 칸에서 세일즈해 해외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해피넷’이라는 일본 비디오회사에서 50만불을 투자받았고 프랑스에 선판매로 10만불을 받았다. 나머지는 감독 지분으로 20%, 스탭 지분으로 20%를 투자형식으로 채웠다. 청어람에서 배급대행을 맡았고. 해외판권은 일본 회사가, 국내 판권은 내가 가진다.

좀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투자를 많이 받을수록 투자자의 권리가 늘어난다. 이건 단지 돈을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 내 영화에 대한 권리가 자본으로 넘어갈수록 영화는 대중에게 더 다가가려하고 홍보방식도 왜곡된다. ‘누구나 창녀를 꿈꾼다’(<파란 대문>),‘내 여자친구 창녀만들기’(<나쁜 남자>) 식으로 영화가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포장되는 것이 싫다.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자금의 여유가 있는 것이 유리하지 않은가.

물론 지금 내 영화들이 100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러 적은 제작비를 고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투자비용과 효과를 대비해볼 때 지금 내 작업방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스펙터클에 대한 욕심이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다. 화려한 볼거리나 대규모 물량은 자본주의가 가지는 욕심이지 창작자가 가질 욕심은 아니라고 본다.

촬영횟수가 한국에서 가장 적은 감독 아닌가.

작품당 평균 25회 정도 찍었고 <섬>이 30회로 가장 길었다. 베를린에 간 <사마리아>는 11회 찍었다. 특별히 엔지가 생기지 않는 한 원테이크(한번 촬영)로 가면 일단 편집이 편하다. 내용 순서대로 찍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수십번 반복해 찍는 화면보다 거칠 수 있지만 많이 찍는다고 좋아진다는 데이타가 정확하게 존재하는가. 내 스타일을 아는 스탭들도 모두 긴장하기 때문에 다른 영화들 대여섯번 촬영에 나오는 그림이 내 영화에서는 한번에 나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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