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 응원단은 치우천황을 그려넣은 깃발로도 유명하다. 불의 신이자 농업의 신인 염제(동이계)는 뇌우의 신 황제의 도전을 받고 패했다. 중국 산둥성 일대에 살던 구려라는 신성한 종족의 우두머리 치우(동이계)는 자신의 임금 염제를 위해 복수에 나선다. 그러나 치우는 ‘피가 100리나 흘렀다’는 탁록전쟁에서 황제의 군대와 접전을 벌여 패하고 만다. 중국에서는 이 승리로 중국 민족의 조상인 황제가 야만족(치우)을 물리쳐 문명의 제국 중국을 성립시켰다고 주장한다.
염제나 치우는 은나라를 비롯한 고대 동이계 종족들이 숭배했던 신이다. 치우를 도운 풍백과 우사가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것도, 염제를 그린 벽화가 집안의 고구려 무덤(오회분)에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자비로운 염제가 황제에게 억울하게 축출된 한을 발산해버린 것이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십, 수백만 인파의 거리 응원은 아니었을까? 중국 문학자 정재서 교수(이화여대)는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에서 ‘신화가 생겨나던 시절의 중국 대륙은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의 중국 신화는 중국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당연히 동양 사람 전체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더 익숙해져 있는 서양 신화와 비교하면서 동양 신화를 이야기한다는 점이 책의 큰 특징이다. 예컨대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창세기의 창조 신화는 하느님이 곡식과 짐승을 닷새에 걸쳐 만들고 마지막 엿새에 사람을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요컨대 창조는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해 ‘가부장제에 오염되지 않은 여성성’의 근원인 여신 여와는 가축 다음에 인간을 만들고 그 다음으로 곡식을 만든다. 인간과 인간 이외의 것에 우열이 없고 종속 개념도 없다. 동양 신화에서는 아예 절대적인 창조주가 없다. 창세기의 야훼와 달리 <회남자>에 나오는 창조의 신은 자신들도 혼돈에서 태어난 자연의 산물이다.
‘동양의 마음과 상상력 읽기’라는 부제목이 각별하다. 서양 신화 일변도의 분위기 속에서 자칫하면 상상력의 제국주의에 젖어들지 않을까 하는 저자의 우려를 반영하는 부제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상상력의 획일화된 경향을 지양하고 동양의 상상력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구상했다’고 한다.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300여점의 컬러 도판이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정재서 지음 | 황금부엉이 펴냄]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