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CJ의 프리머스 인수합병설에 반발하는 충무로
2004-07-20

충무로 영화계가 어수선하다. 바깥으로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에 맞서 하나로 똘똘 뭉쳐 싸우기도 바쁜 상황에서 안으로는 대기업의 극장시장 장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로 소란스럽다. 한국영화감독협회(이사장 임원식) 등 12개 영화단체는 최근 CJ그룹 이재현 회장앞으로 항의서한을 보냈다. '한국영화산업의 독과점을 위한 CJ의 프리머스 합병 기도를 즉시 중시할 것을 요구합니다'는 긴 제목을 달고 있는 편지다.

CJ그룹이 극장유통체인인 프리머스 시네마를 합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며 프리머스 인수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영화단체들이 집단적으로 대기업에 반항의성, 반협박성 편지를 보낸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이 사안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다.

CJ의 프리머스 시네마 인수설 전말

영화계가 이처럼 발끈하는 저변에는 CJ그룹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CJ그룹은 올해 4월 CJ엔터테인먼트 등을 내세워 코스닥 등록업체인 플레너스를 인수(사진)해 CJ인터넷으로 사명을 바꾸고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당시 플레너스는 게임부문인 넷마블만 남겨두고 영화사업부문인 시네마서비스(영화제작.배급.투자)와 프리머스 시네마(극장유통라인), 아트서비스(미술.세트제작) 등을 플레너스의 주요 대주주인 강우석 감독에게 매각, 독립시키기로 양해각서(MOU)가 체결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CJ그룹과 강우석 감독간에 최근 CJ인터넷(옛 플레너스)의 영화사업부문 매각방식을 둘러싸고 심각한 이견이 노출됐다. CJ그룹이 협상과정에서 프리머스 지분 매각에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며 프리머스에 대해 집착하는 듯한 협상태도를 보였다는 게 강우석 감독측의 주장이다. CJ그룹은 나아가 2-3배의 높은 값을 쳐줄테니 강우석 감독이 갖고 있는 프리머스 지분(20.1%)을 CJ그룹에 팔도록 제의했다고 강 감독측은 말했다. 프리머스를 판 돈을 시네마 서비스 인수 비용으로 쓰라는 친절한 제안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강감독측은 반발하고 있다. 극장망인 프리머스를 뺀 채 시네마서비스만 사와서는 영화사업 추진과정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 여기에 영화단체들이 강감독의 손을 들어주며 가세했다. 이것이 CJ의 프리머스 인수합병설을 둘러싼 소란의 전모다. 충무로 영화인들은 CJ그룹이 애초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충무로, 왜 반발하나

충무로의 중소 영화제작자들의 존립기반 자체를 단숨에 허물어 뜨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CJ그룹은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영화제작 및 투자, 배급 사업뿐 아니라 CGV라는 멀티플렉스 극장사업을 벌이고 있다. 6월 현재 CGV의 스크린수는 167개. 여기에 프리머스의 스크린수 89개를 합치면 CJ그룹의 스크린수는 256개에 이르게 된다. 전국 전체의 스크린수 1천250여개의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CGV와 프리머스 양사 모두 지속적인 사업확장으로 스크린수를 계속 늘려가고 있어, 올 연말이면 두 회사를 합친 스크린수는 350개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2005년말에는 500여개, 2006년말에는 600여개 등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영화계는 예상하고 있다. 전국의 극장시장을 CJ그룹이 손아귀에 움켜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충무로는 이런 상황을 '재앙'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될 경우 CJ그룹이 영화상영 부문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바탕으로 투자와 제작, 배급부문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이고, 결국 한국영화산업은 투자와 제작, 배급, 상영에 이르는 전과정에 걸쳐 CJ그룹이라는 한 대기업에 의해 독점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중소 영화사들의 생존권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당국도 예의 주시

문화정책 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은 지난 14일 열린 국회 본회의 사회문화 관련 대정부 질의에서 "이것이 독과점, 공정거래, 경쟁제한행위에 저촉되는지 지켜보고 있다"며 " 문제가 있다면 관련 법률을 앞세워서 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될 일이다. 약간 심각한 상태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CJ의 프리머스 시네마 인수 움직임을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를 묻는 노웅래 열린우리당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거대 공룡 멀티플렉스 체인점이 등장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담긴 말로 풀이된다.

영화단체들 "결코 용납 않을 것"

CJ그룹에 프리머스 인수 계획을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에 연명한 단체는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외에도 한국영화인협회(이사장 신우철), 영화인회의(이사장 이춘연),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이사장 유동훈), 스크린쿼터문화연대(이사장 유지나), 한국영화배우협회(이사장 강신성일), 여성영화인모임(이사장 채윤희), 한국영화기술단체협의회(이사장 강대성), 영화진흥위원회 노동조합(위원장 권오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사장 최정운), 한국영화조명감독협회(이사장 이주생), 한국영화역사학회(회장 김수남) 등이다. 감독, 배우, 작가, 기술스태프, 제작자, 영화학자 등 거의 전영역의 영화인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인 것이다.

이 단체들은 CJ그룹이 프리머스 인수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이를 한국영화산업과 영화인 생존권에 대한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간주하고 유관기관에 진정 및 신고, 기자회견, 항의대표단 방문 등 모든 가능한 법률적, 사실적 수단을 취할 작정이다. 나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한국영화산업의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배급과 상영 부문이 분리될 수 있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CJ그룹 반응

7월말까지로 돼 있는 협상기간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강우석 감독측과 계속 협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강 감독이 프리머스를 3년 안에 CJ측이 넘기기로 구두로 약속해놓고 지금에 와서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CJ측의 한 관계자는 "CGV가 극장유통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며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놓은 만큼 극장부문은 CJ가, 투자제작배급부문은 강우석 감독측에서 각각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로 하고 이런 조건으로 CJ가 강감독에게 2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는데,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고 있다. 저쪽에서 믿음을 저버렸다"고 말했다.

CJ측은 나아가 설사 프리머스를 인수한다고 해도 독과점 운운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CGV와 프리머스를 합쳐봐야 스크린의 실제 점유율은 30%를 넘지 않아 독과점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