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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이 주는 흥분, <롤라 런>

Lola Rennt 1998년

감독 톰 티크베어 출연 프란카 포텐테

EBS 7월17일(토) 밤 11시10분

‘질주’에 관한 영화라면 <트레인스포팅>을 빼놓을 수 없다. 거리를 내달리는 일군의 젊음, 그리고 테크노 음악의 조화를 통해 <트레인스포팅>은 (잠시나마) 새로운 영화의 대명사처럼 된 적이 있다. <롤라 런> 역시 달리기에 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다. 주인공 롤라는 영화 내내 거리를 내달리고 심지어는 같은 공간을 다른 상황으로 인해 달리는 일까지 겪는다. 빨간머리의 롤라가 한없이 어디론가 뛰어가는 모습은 영화의 처음이자 끝, 그리고 모든 이미지와 상징으로 기능하는 듯하다.

암거래 조직에 연루되어 있는 마니에게 보스 로니로부터 임무가 주어진다. 그러나, 일은 자꾸 꼬여만 간다. 마니는 지하철에서 검표원들의 눈을 무의식중에 피하다가 가방을 두고 내린다. 가방에는 20분 뒤 보스에게 가져다줘야 할 돈 10만마르크가 들어 있다. 마니는 여자친구인 롤라에게 도움을 청한다. 약속 시간 내에 돈을 구하지 못하면 마니는 죽을지도 모른다. 롤라는 20분 안에 10만마르크를 구해야 한다. 롤라는 은행간부인 아버지에게 돈을 구하려 하고, 마니는 슈퍼를 터는 것이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롤라가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땐, 경찰이 도착해 있고 뒤이어 총성이 들린다.

짧은 줄거리 요약으로만 <롤라 런>을 판단하려 들면 오산이다. 앞부분의 줄거리는 단지 그것에 그칠 뿐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는 다른 챕터를 준비해놓는 것이다. 마치 TV시트콤을 보듯 엇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다르게 재연하는 것.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닮은 현란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롤라 런>을 ‘움직임’에 관한 영화로 정의하기 충분하다. 점프 컷과 핸드헬드 기법은 물론이고 편집 역시 현란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각종 테크노 음악까지 가세해 영화는 관객이 눈을 뗄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원천봉쇄해버린다. 심지어 진행될수록 애니메이션 화면이 군데군데 끼어들기도 하고 분할화면이 등장하는 등 <롤라 런>은 영화 기교에서 하나의 교본과도 같은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영화가 기교와 스타일 면에서 하나의 재치있는 실험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만듦새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고려할 여지가 있다. 단순명료한 액션과 사랑 이야기를 폼나게 포장해놓은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의 재능으로 볼 수 있지만.

톰 티크베어는 흥미로운 경력을 지녔다. 그는 11살 때부터 8mm 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이후 영화 스탭으로 활동했다. <겨울잠을 자는 사람들>(1997) 등으로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등의 장르를 자유롭게 만드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롤라 런>은 독특한 속도감으로 “새로운 누벨바그를 보는 듯 흥분을 주는 영화”라는 호평을 들으면서 선댄스영화제 등 다수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다른 한편으로 톰 티크베어 감독은 영화음악에 많은 관심을 보여 <롤라 런>은 물론이고 <매트릭스> 시리즈의 음악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