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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멀티미디어 융합 시대의 아시아 허브를 꿈꾼다
박혜명 2004-07-14

홍콩 필름마트 현지 취재

지난 6월23일부터 25일까지 열린 홍콩 필름마트 기간 마지막날 오후, ‘해피 아워’란 이름의 짤막한 행사가 열렸다. 아시아 각국의 독립영화인들이 모인 이 자리는, 필름마트가 올해부터 시작한 아시아 독립영화 스크리닝에 따른 부대행사다. 상업적 목적이 주를 이루는 마켓과 언뜻 조화롭지 못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최쪽은 아시아의 독립영화인들을 초청하고 <여섯개의 시선> 등 15편의 아시아 독립영화들에 스크리닝 기회를 제공했다. ‘해피 아워’ 세션의 진행은 홍콩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제이콥 웡이 맡았다. 배우 증지위가 “영화의 미래는 여러분 같은 젊은이들 손에 달려 있다”고 평범한 인사말을 남겼다. 별다른 순서는 없었다. 한 시간 반이라는 예정된 시간 동안 아시아의 독립영화인들은 구면과 초면의 인사를 서로 나눴다.

세계의 트렌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멀티-미디어 융합각국의 TV 및 영화 관련 부스들이 자리한 홍콩컨벤션센터 7번 홀 내에는 낯선 돔이 세워져 있었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의 이 커다랗고 어두운 돔 내부에서는 대형 모니터들이 다양한 영상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 영상물의 전시자들은 애니메이션, 게임, 인터넷 방송 등 주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관련 회사들. 최첨단의 파빌리온 바깥 주변으로 그들의 개별 부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낯선 돔의 존재 이유는 마지막날 기자회견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화두는 ‘멀티-미디어 융합’(Multi-Media Convergence: 영화, TV, 이동전화, 게임 등 서로 다른 매체들을 하나의 영역으로 모으는 것)이다. 필름마트쪽은 세계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멀티-미디어 융합을 지향하고 있다고 보고, 이러한 트렌드 위에 홍콩이 아시아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쳤다. 따분한 통계 수치들이 제시되는 가운데 기자들에게 나누어준 자료 한 페이지엔 ‘마켓에서 바이어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홍콩 영화계 스타 톱5’ 명단이 남녀별로 적혀 있기도 했다.

△ 중국전영감독인협회와 중국전영해외추광중심(China Film Promotion International) 부서가 공유하고 있는 부스. (왼쪽 사진) 전쟁영화 <번개와 우뢰>, 멜로드라마 <도시처녀 시집 와요> 등 다양한 영화들을 전시한 북한 부스. (오른쪽 사진)

홍콩 필름마트는, 그러니까 여러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분주히 뛰는 형국이었다. 꼭 비판적으로 볼 것은 아니지만, AC닐슨에 의뢰한 통계자료를 통해 지난해보다 자신의 규모가 커졌다고 말하는 이 마켓은, 어떤 방향으로 키와 살을 늘리려는 건지 목적이 너무 많은 동시에 한편으로 불분명해 보였다. 지난해 9월에 열렸던 행사를 올해 6월로 옮기고 내년엔 다시 3월로 옮겨 홍콩국제영화제와 ‘합체’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는지, 마지막날엔 ‘폐막 스크리닝’이라는 이상한 순서를 남겨놓기도 했다. 독립영화를 챙기는 남다른 섬세함도 보여주면 좋겠고, 영상산업의 세계적 트렌드도 따라잡아야겠고, 자국영화도 더 잘 팔아야겠다는 복잡다양한 의욕이 구석구석에서 비쳐졌다.

△ 홍콩의 스텔라 메가미디어 그룹 부스. (위)

행사 홀 가장 안쪽, 온돌방으로 치면 아랫목쯤 될 것 같은 자리에 중국 CCTV 부스와 홍콩의 스텔라 메가미디어 그룹 부스가 등을 맞대고 있었다. 모든 부스들 가운데 가장 널찍하고 시원한 모양새였다. 그 품새에 어울리게 CCTV 부스 사람들은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바이어들을 맞는 한편, 스텔라 메가미디어 부스에선 <디스커버 차이나>(Discover China)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주메뉴로 전시해놓고 있었다. 부스 개수로 따져봐도 총 304개 중 홍콩과 중국이 각각 67개와 59개로 가장 많았다. 22개 부스를 설치한 대만이 순위의 뒤를 이었다.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코리아픽쳐스, 씨네클릭아시아, 미로비전, KM컬쳐 등 7개의 국내 영화사들이 ‘Korean Film Council’(영화진흥위원회)이란 이름으로 공유한 하나의 부스는, 세 사람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았던 북한 부스와 함께 그저 수많은 비(非) 중국어권 부스들 중 하나였다. 국내 영화사 직원들은 3일 내내 빼곡한 미팅 일정에 분주히 돌아다니면서도 “여긴 그렇게 중요한 마켓은 아니고, 바이어들한테 얼굴 도장이나 한번 더 찍으려고 왔다”는 말을 반복했다. 조선영화수출입사의 오하일 고문과 최혁우 사장 일행도, 오는 9월 평양영화축전 때 상영할 영화들과 “청소년들을 교양할 수 있는” 영화들을 구매하러 4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을 셋쨋날 일찍 떠났다. 이상할 건 없었다. 여기는 홍콩무역사무국이 모든 참석자들의 항공·숙박료를 들여 구색을 갖춘 그들만의 장터였다. 이 장날 동안에 가장 많이 읽고 들은 말도, 영어만큼이나 한자(漢字)였고, 광둥어였고 베이징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