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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도발적인 그림자를 포착하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김혜리 2004-07-13

가장 간결하고 가장 매력적인 역대 최강 해리 포터 무비

이제 와 새삼스럽지만, 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은 관객이 <해리 포터> 영화를 냉정히 판단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독자의 눈을 가진 관객은 책이 묘사한 수많은 마법과 실물(의 이미지)을 대조 확인하는 일만 해도 장난감 가게에 들어간 아이처럼 숨이 벅차다. 거꾸로 <해리 포터>를 읽지 않은 관객이 영화를 온전히 음미하기도 어렵다. ‘포터월드’를 관통하는 복선과 뉘앙스를 암시하는 영화의 윙크에 제때 호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의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이하 <아즈카반의 죄수>)는 원작 독파 여부를 불문하고 더 큰 만족감을 안긴다. J. K. 롤링이 문장으로 쓴 것을 영화로 옮기는 데에 근면했던 1, 2편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과 달리, 신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롤링이 문장으로 쓰지 않은 것, 어둡고 도발적인 <해리 포터>의 영기(靈氣)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출은 매우 활달하고 종종 불경하다. 원작이 서술한 것을 생략하고 상술되지 않은 대목을 임의로 묘사하는가 하면 (감히!) 없던 것도 집어넣는다.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어떤 모험을 겪는지는 책읽기를 즐기는 주변 어린이들에게 자세히 문의하길 권한다. 다만 여기서는 열세살의 해리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았다는 것, 볼드모트에게 협력했다가 아즈카반 감옥에 갇힌 흉악범 시리우스 블랙(게리 올드먼)의 탈옥이 해리의 신변을 위협한다는 것, 그에 맞서 학교에 파견된 간수 디멘터들이 시리우스 못지않게 해리한테 고통을 준다는 정도만 언급하자. 행복한 추억과 기쁜 생각을 깡그리 빨아내서 최악의 기억만 남기는 디멘터 앞에서 다른 아이들은 떨지만 해리는 번번이 의식을 잃는다. 이 소년의 마음은 또래들이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밑바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모든 <해리 포터> 영화의 전개는 원작의 족쇄에 묶여 있다. 이야기는 항상 프리벳가에서 출발해 킹스 크로스 역의 9와 3/4 플랫폼을 통과해 호그와트의 연회장에 도착하고 영국 사립학교의 3학기 학제를 따라 흘러간다. 그러나 알폰소 쿠아론은 소설을 낭송하듯 한결같은 리듬을 유지한 콜럼버스와 달리, 시퀀스의 경중을 분별하고 정적과 폭발을 배치했다. 1편부터 줄곧 시나리오를 쓴 스티븐 클로브스는 3편의 작업을 “해방”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3편의 장점은 “비굴한 각색”이라고 비판받았던 콜럼버스의 덕목을 방증하기도 한다. 내키는 대로 머무르는 쿠아론의 연출이 지루한 관객이라면, 끊임없이 스토리를 움직여 나아가는 콜럼버스의 재능을 그리워할 것이다. <아즈카반의 죄수>의 서사적 세련됨은 3편의 원작이 지닌 속성에 기인한 바 크다. 볼드모트를 배제하고 부모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에 집중한 3편은 갈등의 밀도가 높다. 힘이 주는 가학적 쾌감에 서서히 눈떠온 해리는 3편에 이르러 드디어 “죽여버릴 거야.”라고 고함친다. 최후의 순간, 갑자기 불사조가 날아들거나 철학자의 돌이 주머니에 굴러들어 해결을 보던 1, 2편에 비해, 시간여행의 모티브로 실마리를 풀어가는 결말부의 구조는 영화적 물증을 첨가해 어느 때보다 강력한 카타르시스와 감흥을 준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어두워지던 시리즈에 <아즈카반의 죄수>는 결정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영화는 혼자 움직이는 그네, 의자를 뚫고 기괴하게 부풀어오르는 육체, 이국적이고 기괴한 소품 등 호러 장르의 코드와 어법을 과감하게 채용한다. 3편의 또 다른 특징은 마법학교의 ‘세속화’다. 올해의 호그와트 생도들은 머글 청소년들처럼 청바지를 입고 읍내로 나들이를 가고, 기숙사 방에 모여 게임을 한다. 성채를 벗어나 숲과 풀밭, 호수, 그리고 마을로 해리와 친구들을 풀어놓는 3편에서 비로소 호그와트는 캠퍼스다운 캠퍼스의 지도를 갖춘다. 1억3천만달러의 블록버스터다운 특수효과 스펙터클들은 독립된 구경거리로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이 철저히 심리적인 맥락에서 삽입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포에 형상을 부여하는 보가트 수업과 퀴디치 경기 중의 추락, 히포그리프를 탄 해리가 수면을 차고 날아오르는 비행은 좋은 예다. 열세살 동갑내기 혼성 3인조가 뛰고 달리며 포옹하고 부축하는 광경에는 호르몬이 자아내는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그것은 소년 소녀가 자라는 모습을 목격한 관객의 미소를 부른다. 매번 이슈가 되는 어린 배우들의 연작 출연 여부는 헛된 고민으로 보인다. 인생의 형성기를 해리 포터로, 론 위즐리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로 살아온 아이들보다 더 좋은 배우가 과연 있을까. 오히려 관건은 J. K. 롤링의 집필속도다.

여전히 3편의 제작자로 남은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시리즈의 산파이자 연재 작가의 자세였다면, 알폰소 쿠아론의 태도는 나그네 단막극 연출자의 그것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복선이나 주변 캐릭터의 소개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다음 영화에서 알아서 하라지” 하는 투다. 블록버스터라는 비싸고 근사한 장난감을 선물받고 원없이 신나게 놀아보려는 그 아이 같은 유희 정신에 힘입어 <해리 포터> 프랜차이즈는 생기를 얻고 미래의 행동반경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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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DVD 확장판을 달라

요주의! 영화에 나오지 않는 것들을 밝히는 것도 스포일러라면 이어지는 정보들은 한 무더기의 스포일러다. 원작의 방대하고 치밀한 설계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호그와트 비밀지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사라진 데에 당황할 것이다. 권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노출되는 해리의 아버지 제임스 포터의 캐릭터 이해에 중요할 뿐 아니라 극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 중 하나인 스네이프 교수가 해리를 그토록 괴롭히는 이유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퀴디치 게임이 축약되면서 그리핀도르가 고대했던 퀴디치 우승의 감격이 사라진 것도 퀴디치가 해리에게 갖는 특별한 의미에 공감하는 독자에게는 아쉬운 점. 원작 중간에 나왔던 파이어볼트 빗자루 에피소드의 위치도 뒤로 밀렸다. 두번에 걸친 해리의 호그스미드 외출도 한 신으로 압축됐다. 고양이 크룩생크와 쥐 스캐버스의 싸움에서 비롯된 헤르미온느와 론의 냉전도 미약하게 묘사됐다. 팬들의 불만은 당연히 러닝타임을 20여분 줄이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었냐는 것일 터. 알폰소 쿠아론은 사이빌 트릴로니 교수의 캐릭터도 삭제하길 원했으나 이후 연작에서 트릴로니의 역할을 중시한 롤링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추가된 것도 있다. 원작자의 허가 아래 다리와 시계탑이 호그와트 교정에 들어섰고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학교 합창단이 예고편부터 인기를 끈 <사악한 무엇이 이리 온다네>를 열창한다. 쿠아론은 거인 해그리드의 사이즈에도 집착을 보였다(투포환이 튀는 것처럼 보이는 한 장면은, 알고보면 해그리드의 물수제비다). 아주 고집스런 순수주의자들은 루핀 교수의 콧수염에도 항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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