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생·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술팀 영사보조·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술팀 사전자원봉사·5회 부산국제영화제 기술팀 스크리닝 매니저·서울시네마테크 ‘오슨 웰스전’, ‘오즈 야스지로전’, 멕시코영화제, 3회 여성영화제
오퍼레이터·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기술팀 필름 코디네이터
그에 관해 굳이 말한다면, ‘영화제 마니아’쯤 될까. 네번의 부천영화제를 포함해 9번의 각종 영화제에서 뒤치다꺼리를 맡아온양희찬씨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른살 전까지는 계속 영화제 일을 하고 싶다”는 인물이다. 오는 7월12일부터 시작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가 맡은 일은 필름 코디네이터. 상영될 필름을 받아 함께 보내온 서류와 대조하고, 가로세로 비율이 1 대 1.85인지, 1 대 1.35인지
검색하고, 사운드 방식 돌비SR인지, DTS인지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그의 임무이다. 또 영화제 진행중에는 상영시간에 맞춰 필름을 보내고,
영사기사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아직 개막까지 한달이 넘는 기간이 남아 본격적으로 필름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필름을 검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것이라며 그는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특히 편집기를 통해 필름을 검색하는 다른 영화제와는 달리 직접 은막에 영사를
하며 일일이 필름을 체크하기로 한 터라, 그는 시사실의 어둠에 갇혀 한 줄기 빛과 승부하며 한여름날을 보내야 할 처지다.
그가 필름 관련 업무를 맡게 된 데는, 요즘엔 간혹 “번듯한 직장을 잡지, 웬 영화제?”라는 투로 눈을 흘기곤 하는 어머니의 덕이 컸다. 군
복무를 끝내고 백수로 지내던 1998년 겨울, 그의 어머니는 평소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아들에게 부천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니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는 처음에는 극장에서 표를 받고 관객을 정리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고 지원했지만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술팀에 발탁됐다. 당시 그가 맡았던 일은 필름 코디네이터가 필름을 주면 이를 극장으로 가져가 영사기사에게 전달하고, 별 사고 없이 상영이
되는지 확인하는 영사보조. 이때가 계기가 돼 다음해에도 부천영화제에서 같은 일을 하게 됐고, 그 다음해인 2000년에는 영화제 기간 전부터
함께 필름 수급계획을 논의하는 사전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지난해 말과 올해엔 평소 익혀뒀던 자막기 조작 솜씨를 발휘해 오슨 웰스 회고전 등에서
자막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그는 영화제뿐 아니라, 컬트영화의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작품을 통해 영화의 매력에 빠졌고, 김기영의
<하녀>를 보고선 “나는 이런 영화 쪽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그는 호러나 에로 같은 비주류 장르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품고
있다. 오죽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시절, 어머니에게 “등록금 대신 비주류영화를 갖추고 시사 공간까지 갖춘 비디오가게 하나 내달라”고 얘기했다가
눈물 쏙 빠지게 혼나기도 했을까. 그가 추구하는 세계와 유사한 작품들을 주로 상영하는 부천영화제에서 일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일는지도 모른다.
서른 이후엔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픈 희망을 갖고 있는 양씨는 “영화제에서 일할 때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관객과 씨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관객이 행복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면 쌓였던 피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행복감이 가득 찬다”고
이야기한다.글 문석 기자 ·사진 오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