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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빨간 마스크는 어디에서 왔어? 우메즈 가즈오의 <무서운 책> 시리즈
심은하 2004-07-09

후텁지근한 여름밤이다. 온몸에 달라붙는 불쾌의 점막은 몇번씩 찬물을 끼얹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과 <나이트메어> DVD를 시리즈로 돌려보아도 모니터 속의 핏방울이 컵라면 국물마냥 끈적거릴 뿐이다. 셜록 홈스와 애거사 크리스티는 언제 다 읽었는지 까마득하기만 한데, 이토 준지는 신작을 내놓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런 고민 속에 괴로워하는 당신에게 왔다. 우메즈 가즈오가 왔다.

일본 괴기호러의 대명사, 우메즈 가즈오는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일본 만화가 중 가장 중량급의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그 독창적이면서 방대한 작품 세계를 둘러보면 데즈카 오사무를 제외하고 일본 만화계에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만화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나중 탁구부>식의 악취미 과격 개그의 신기원을 연 <마코토 짱>, 세기말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아키라>와 <배틀 로얄>에도 큰 영향을 준 <표류교실>과 같은 작품은 오히려 그가 이룩한 세계에서는 변방의 봉우리로 여겨질 정도다. 섬뜩한 상상력으로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그려온 호러 만화의 세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 호러 작가인 이토 준지조차 그에게 끊임없이 오마주를 던지는 문하생으로 여겨질 정도다.

이번에 소개된 <무서운 책> 컬렉션은 1980년대 초반 아사히 소노라마 출판사에서 우메즈의 작품들을 애장판 형식으로 묶었던 것으로, 그뒤 몇번에 걸쳐 재발행된 인기 시리즈다. 거울 속에서 살아나온 나의 분신이 나의 역할을 하면서 겪게 되는 끔찍한 대결, 나비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자기 어머니의 죽음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 등 여성적인 시선의 질투, 시기, 복수를 주테마로 삼아온 우메즈의 호러 세계가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현대의 공포 만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극도로 과장된 앵글과 영화적 기법에 영향을 받은 스릴 묘사와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고전적이고 심심한 면모도 없지 않다. 시리즈 1, 2권에 실린 주요 작품 <거울>과 <나비의 묘>는 1960년대 후반 청소년 잡지 <틴-룩>에 연재된 것으로, 1958년의 <나도 또 하나의 나>와 1962년의 <붉은 나비의 소녀>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그만큼의 시대가 묵어 있고, 현대적 감각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포라는 감정은 어딘가 세련되고 날선 곳보다는 어눌하고 시간을 잃어버린 듯한 곳에서 신비롭게 등장하는 법이라. 요즘 아이들이 그 옛날의 괴담에 새롭게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닌가? 제5권의 <입이 귀까지 찢어질 때>는 일본과 한국에 널리 퍼졌던 ‘뱀여자’, ‘빨간 마스크’와 같은 괴담들의 원형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