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막강 선전조직조차도 호된 여론의 질타 만큼 막대한 흥행수입을 유발할 수는 없다. 이는 <화씨 9.11>의 연출자인 마이클 무어가 슈퍼스타 감독 멜 깁슨의 말많았던 종교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이 영화는 올해 초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으나 최소한의 마케팅으로 기록적 입장권 판매수입을 올렸다. 깁슨은 자기 영화 관련 뉴스를 요약보관해두는 전략을 통해 영화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다. 지난 2월 개봉 무렵까지 이 영화는 일부 유대인들과 가톨릭 지도자들로부터 반유대적이며 너무 폭력적이란 이유로 격렬한 비난을 들은 반면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옹호를 받기도 했다.

2천500만달러의 자비로 제작된 깁슨의 영화는 북미에서 3억7천만달러, 여타 세계지역에서 6억4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려 북미 흥행사상 8번째로 가장 성공한 영화가 됐다.

무어의 논쟁적 정치 기록물인 <화씨 9.11>은 지난 25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봉돼 주말 실적으로 2천390만달러를 거두어 들여 사상 어느 기록물보다 많은 흥행수입을 기록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최고의 선전은 공개적으로 공격받는 것"이라고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의 영화학과 교수인 하워드 수버는 말하고 "똑같은 일이 멜 깁슨의 영화에서도 일어났다. 이 영화들은 일종의 선전이 영화사로 진출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선전비는 아주 싸다"고 덧붙였다. 보수단체들로부터 '비애국적'이라느니 '반미적'이라느니 '거짓투성이'라느니 따위의 악의적 언사로 융단폭격을 받은 바 있는 <화씨 9.11>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최초의 기록물이 됐다. 이라크에서의 폭력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는 11월의 미국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나온 이 영화는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조지 W.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시민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부시가(家)를 오사마 빈 라덴가에 비유하고 있다.

제작사인 미라맥스는 이 영화 제작에 약 600만달러를 지출했으나 배급업자들은 판촉비로 겨우 1천만달러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블록버스터의 광고예산이 약 4천만달러인 할리우드의 기준으로는 소액인 셈이다. 올여름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인 <트로이>는 제작과 판촉비로 2억2천500만달러가 들었고 북미에서 약 1억3천만달러, 전세계에서 약 4억5천800만달러를 벌었다.

그러나 <화씨 9.11>은 개봉 후 불과 3일만에 이익으로 들어서 매우 비싸고 경쟁이 극심한 영화계에선 경이적인 실적을 올렸다. 이 영화는 월트 디즈니가 배포를 거절하고 판권을 영화재벌들인 하비 앤 밥 와인스타인에게 팔아 넘긴 후 조심스런 할리우드 영화사들로선 너무 정치적으로 뜨거운 재산을 일약 일확천금을 거두는 금광으로 변모시켰다. 세인의 평판이 자자한 가운데 와인스타인 형제는 캐나다 소재 게이트 엔터테인먼트 및 IFC영화사와 배포계약을 맺었다. 한편 무어는 내키지 않아 하는 디즈니와 보수적 반대자들과 공개적 싸움을 벌임으로써 뉴스보도를 부추겼다.(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