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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재밌게·열심히·한번만‥ “봐달라” 시사회
2004-06-25

어떤 영화가 자기 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처음 상영되는 걸 ‘월드 프리미어’라고 한다(자기 나라 뺀 나머지 나라에서 처음 상영될 때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영화 기자와 평론가를 불러놓고 영화를 트는 ‘언론 시사회’는, 1년에 60편 남짓 만들어지는 한국 영화의 ‘월드 프리미어’인 셈이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월드 프리미어에 참석할 수 있다는 건 영화 기자가 누리는 큰 ‘특권’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영화의 재미는 시사회보다 개봉 뒤 극장에서 볼 때가 더 크다. 시사회 때는 영화에 푹 빠지기보다 기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머리 한쪽으로는 점수를 매겨가며 보기 때문이다. 언론 시사회장에선 웃음소리, 비명, 탄식 같은 것도 일반 극장에서보다 덜 나온다.

강우석 감독은 자기가 만든 영화의 시사회장에 안 들어간다. <공공의 적> <실미도> 모두 배우들만 무대인사를 했다. 자신은 시사회장 입구에서 인사를 나눈 뒤 상영이 시작되면 시사회장 밖의 커피숍에서 반응을 기다린다. 시사회장의 엄숙함이 더 없이 무겁고, 웃음소리가 나와도 좋아서 웃기보다 비웃는 소리처럼 들려 앉아 있기 힘들다고 했다. 이처럼 까탈스런 ‘잔소리꾼’들에게 감독들이 상영직전 무대에서 하는 인사말 중 가장 많은 게 “열심히 만들었으니 재밌게 봐달라”이다.

박찬욱 감독은 재작년 <복수는 나의 것> 시사회에서 이와 반대로 “재밌게 만들었으니 열심히 봐달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이 영화는 흥행이 안 좋았고, 뒤이어 만든 <올드 보이>의 시사회장에서 박 감독은 “이번엔 할 말이 없다. 대신 크레딧 올라가고 나면 (뉴질랜드에서 녹음해온) 산바람 소리가 나온다. 그 소릴 꼭 듣고 가달라”며 톤을 낮췄다. <올드 보이>는 대박이 터졌고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갔다. 칸의 공식상영 때 박 감독은 다시 “재밌게 만들었으니 열심히 봐달라”고 했다. 영화를 ‘열심히’ 본 쿠엔틴 타란티노 등 심사위원들은 박 감독에게 심사위원대상을 줬다. 읍소형도 있다. 최근 <나두야 간다>의 시사회장에서 제작자 이동권씨는 “<청풍명월> 다음에 만든 영화다. 이번에도 안 되면 망한다. 한번만 봐달라”고 했다.

언론시사회 뒤 영화를 고쳐 개봉하는 경우도 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언론시사회 뒤 죽은 장혁과 전지현이 만나는 장면이 너무 길다는 비판을 접수해 12분을 자르기로 했다. 그런데 필름프린트가 이미 전국 극장에 배포된 상태였다. 서울지역 극장의 프린트는 가져와 잘랐으나, 지방은 그럴 수가 없어 제작사 직원들이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하며 잘랐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시사회 프린트엔 배용준이 죽을 때 하인이 “양반으로 태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이렇게 죽느냐”는 말을 했으나, ‘한창 슬픈 분위기를 깬다’는 반응을 좇아 개봉 때 뺐다. 영화기자가 영화팬들에게 “도끼눈 뜨고 영화 보는 시사회장에 가는 걸 부러워하지 말고 일반극장에서 맘껏 웃고 울며 영화를 즐겨라”고 말하면 약올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