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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은 멋있었다> 전액투자, 배급하는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
사진 정진환이영진 2004-06-24

"젊은 사람들 하는 거 보고 싶어서 했지"

“기획실 다 모이라고 해!” 서울극장의 하루는 곽정환(74) 회장의 격한 고함으로 시작된다. 극장 직원들이야 매일 반복되는 일이니 익숙할지 모르겠으나,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사정 모르는 이에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자신이 투자·배급하기로 한 영화 <그 놈은 멋있었다>(7월23일 개봉예정)의 예고편 시사를 본 뒤 흡족하지 않았는지 곽 회장은 마케팅 담당자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영화판에 발을 딛기 전, 곽 회장은 ‘군인’이었다. 평안남도 용강에서 출생한 그는 소령으로 예편한 뒤 1962년 “영화제작을 하던 삼촌 친구 때문에 우연히” 충무로에 입문한다. 1964년 합동영화사를 차려 지금까지 300편의 영화를 제작한 그는 “지금까지 밑진 영화는 단 세편”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후 승승장구했다. 당시 누구나 그러했듯이 “지방 흥행업자들에게서 받은 돈의 70% 정도만으로 영화를 찍어” 부(富)를 일궜지만, 그는 대부분의 동료 제작자들이 1980년대 도산으로 몰락했던 것과 달리 ‘홀로’ 살아남았다. “여전히 건재하나 힘을 쓰는 방식이 낡았다”는 부정적 평가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만, 그가 ‘뛰어난 수완을 가진 장사꾼’이라는 데 이견은 없는 듯하다.

<씨네21>이 선정하는 한국 영화산업 파워 50에 9년 연속, 상위권에 랭크됐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20여년 전 서울극장을 차려 이후 배급·극장업계에서 큰손 대접을 받아온 그는 몇년 전부터 부인인 이경희(고은아라는 예명으로 1960, 70년대 주로 활동한 여배우) 사장과 아들 곽정남 부사장에게 극장을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섰다지만,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서울극장에 오전 9시에 출근해서 퇴근 전까지 극장 곳곳을 둘러보는 순시를 계속하고 있는 한 그는 종로의 터줏대감이다. 몇편의 영화에 소액 투자를 하는 것이 전부였으나 얼마 전 <그 놈은 멋있었다>의 제작비 전액을 내놓은 뒤 배급까지 하기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그를 만났다.

포스터나 예고편에도 신경을 꽤 많이 쓰는 것 같은데.

내가 하는 건 어디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거 정도야. 나머진 다 젊은 친구들이 알아서 한다고. 이 분야도 발전해서 그런지 젊은 애들이 이야기하는 걸 못 알아듣겠어. 다만 오늘은 극장 앞에서 체크하는 친구들(입회인을 의미함)이 포스터를 젊은 관객이 별로 맘에 안 들어하는 것 같다 해서 몇마디 했지.

전과 비교하면 마케팅 비용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느끼지 않나.

남들 하는 것만큼은 해야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잖나. 옛날로 치면 말이 안 되지만 지금은 프린트 달랑 6개 뜨던 시절이 아니니까.

원작이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다. 10대가 주요 독자층인데, 어떻게 투자를 결정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진문이라고 우리 방계사 사장이 있는데. 어느 날 나보고 <그 놈은 멋있었다>라는 책이 있는데 그걸 한번 (영화로 제작)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애들한테 인기있다면서. 그럼 한번 가서 (판권을) 사봐라 했지. 근데 이미 이황림이 몇년 전에 그걸 샀다는 거야. 이황림이랑 나랑 관계가 있지. 내가 그 친구 만든 영화제작해서 손해도 보고 그랬으니까. (웃음) 그래서 연락이 닿았는데 이황림이 “회장님하고 같이 하려고 사놨죠” 그러더라고. 나랑 친하니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렇게 된 거야.

극장업을 20년 넘게 했다. 이번 영화 흥행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돈 벌고 안 벌고는 별로 안 중요하다고. (잠시 침묵) 괜찮을 것 같긴 해. 해외 판권이랑 비디오쪽에서 15억원 정도는 개봉하면 들어올 것이고. 나머지 15억원만 벌충하면 되니까. 혹시 알아. 200만명, 300만명 될지도 모르지.

전액 투자를 한 이유가 뭔가. 흥행에 대한 확신이 들어서 아닌가.

나보고 충무로 대부라고들 하잖아. 오래된 사람이라며. 그러면 내가 남한테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지. 남의 돈 빌려서 했다 쳐봐. 혹시라도 손님 안 들어서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 그러면 영화계가 전체로 욕 먹는다고.

현장엔 자주 갔나.

영화 스타트한 다음에 한번도 안 갔어. 내가 가면 너무 잔소리할 것 같아서. 이번에 투자한 것도 어린애들이 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한 건데 내가 나서면 안 되는 거지. 이번 영화에서 난 멤버가 아니라 아웃사이더야.

한국영화에 남은 건 내리막길뿐이다, 한국영화 흥할 때가 위기다, 라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돈이라는 게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거야. 젊은 사람들이 한국영화를 이만큼 올려놨지만 지금 더 잘해야 한다고. 그래야 늙은 나도 예쁘게 추락할 수 있지. 젊은 영화인들이 그럼 뭘 해야 하느냐. 합심해서 투자자들 밑지지 않게 해줘야 해. 그러려면 영화제작도 우리 실정에 맞게 가야 한다고.

한국영화제작에 거품이 있다는 지적 같은데.

얼마 전에 강우석이 인터뷰하면서 <실미도>로 번 돈 영화 몇편 해서 다 까먹었다고 그러잖아. 배우만 해도 요즘은 현장에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분 바르는 사람, 가방 드는 사람. 그 사람들만 해도 몇명이야. 밥값만 해도 1만원이면 될 것이 2만원, 4만원이 된다고. 이런 걸 구조조정해야 돼. 물론 포니 타던 놈이 현대차 제일 좋은 거, 거 뭐지? 하여튼 좋은 차 타게 되면 쉽게 그거 포기 못하는 건 알지만 내 노파심으로는 그런 거 낭비라고 생각하는 거야. 10만원이면 집을 지을 수 있는데 20만원, 30만원을 들이고 있다고.

한국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부문별로 세분화가 이뤄졌기 때문이고, 제작비 상승은 그에 대한 비용 지불이다라는 의견도 있는데.

이만큼 된 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소재 개방한 게 제일 크다고.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나 안 그랬으면 상영 못했다고. 여기에다가 싼 이자로 제작비 융자해주고, 또 유학이나 대학 졸업한 젊은 애들이 영화판에 몰려왔잖아. 그러니까 잘될 수밖에 없지. 전에는 충무로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공부 안 하는 망나니들이었다면 지금은 공부 끝낸 망나니들이니까 낫지.

최근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밝혔는데. 극장 입장에서 이번 발표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국영화가 잘된 거야. 금방 말한 조건들이 업그레이드된 결과로 나올 수 있었던 건 스크린쿼터 때문이지. 미국이 스크린쿼터 없애라고 그러는 바람에 젊은 영화인들이 반미 시위하고 그랬잖아. 관객도 미국영화 보면 나라 팔아먹는 매국노이고, 국산영화 보면 애국자라고 생각하는 게 생겼다고. 그래서 한 3, 4년 한국영화가 잘될 수 있었어. 미국 애들은 괜히 스크린쿼터만 물고늘어지다가 한국시장 뺏긴 거라고.

스크린쿼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더 분명히 밝힌다면.

다들 내가 스크린쿼터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니야. 원칙적으로야 말이 안 되지. 백화점에서 이번엔 한국 물건 팔고 또 어떤 때는 미국 물건 팔고 그러면 써? 난 애국자도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그게 필요가 있다고 봤어. 극장업자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스크린쿼터제가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왜 그러냐면 미국 사람들이 약소국에 대해서는 큰 영화 하나 놓고 그뒤에 쓰레기 영화를 네댓개 단다(이른바 끼워팔기)고. 스크린쿼터가 있으면 극장 입장에서는 쓰레기를 하나 정도로 줄일 수 있어. 미국영화협회(MPAA) 애들이 한국 오면 내가 그랬다고. 너희가 흥행될 수 있는 영화를 한국 극장에 못 붙인 경우가 있으면 말해봐라. 내 입장에서도 쓰레기 치울 바에야 한국 쓰레기 치우는 게 더 낫다고 했다니까.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걸 넘어서 무서워하는 것 같다.

내가 좀 무섭지. 용서가 없거든. 일에서만큼은. 그래도 꼼짝 못한다고. 왜냐하면 내가 저희보다 부지런하거든. 일 하나 할 때도 난 빨리빨리 정하고 추진하고 그러는데 애들은 만지작거리다가 마는 거야. 또 내가 별장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어제도 동태찌개 먹었어. 취미도 없어. 도박을 하나 술을 먹나 담배를 피우나. 온니(only) 일이야. 그러니까 뒤에서 씹지도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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