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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이슈] 저작권은 천부의 인권인가
2004-06-23

최근 저작권법 개정과 관련된 공청회장은 예외없이 업자들의 성토대회장으로 변질된 듯하다. 참석자에 따르면, 저작권이 마치 ‘천부의 인권’인 양 인식하면서 이에 대한 사소한 침해 또한 절도라고 표현하는 일부 권리자들이 있다 한다.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가 싶기는 하지만, 개인의 창작물은 창작자의 노력의 산물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당 공동체, 나아가 전 인류가 쌓아온 창조적 유산을 이어받는 것이며, 그 또한 하나의 공적 자산이 된다. 따라서 저작권에 관한 규정과 관행은 공적 가치와 사적 가치 사이의 갈등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의 절충점을 찾아왔다.

이른바 공공의 영역(public domain) 혹은 공정사용(fair use)을 통한 저작권의 제한이 비교적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저작권에 대한 담론이나 저작권법 개정방안에 대한 논의는 다소 우려스럽다. 지나치게 권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서다. P2P와 같은 문제들이 문화산업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문제해결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터넷은 처음부터 자유로운 사용자들의 놀이터이자 터전이었다. 남들의 터전에(비록 그들의 장난감을 만들어낸 주인이라 하더라도) 뒤늦게 자리잡으려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그 대상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의 대중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소리바다 사태나 최근의 MP3폰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고 있자면, 음반산업 주체들의 조급함과 탐욕스러움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수많은 대중을 불법자로 몰아세우며, 인위적으로 기술발전을 가로막는 태도는 올바르지도(과연 P2P가 실제 불법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현명하지도 않다(이 태도가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윤 획득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몇 영화사들이 유저들 몇명을 본보기식으로 고발한 것은 개인적으로 유감이라 생각한다. 특히 그 방식을 민사가 아닌 형사적으로 택했다는 것은 더욱 찬성하기 힘든 일이다(비록 일방적인 합의금 부과절차를 거쳤다 하더라도). 영화산업 주체들이 좀더 현명하고, 느리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없는 것일까. 대중을 불법으로 몰아세우거나, 이들을 불법자로 모는 법안개정을 통해 답을 찾는 것은 음반산업 주체들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답은 산업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천재성은 기술적인 환경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부가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왔다. 1976년 유니버설은 포괄적인 저작권 침해 위험을 들어 VCR 제조사인 소니를 고소했으나, 1984년 미 연방대법원은 소니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 미국 영화산업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비디오산업이었다. 산업주체들이 대중과 기술발전에 인위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을 때, 오히려 새로운 이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구를 발견했던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조급하고 탐욕스러웠던 유니버설의 손을 들어주었더라면 근 20년에 걸친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호황은 다소 다른 양태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준형/ 영상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