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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소>가 실패한 진짜 이유

<여친소>가 실패한 진짜 이유

다들 곽재용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극장용 장편영화 버전 전지현 CF라고 이야기한다.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그 사람의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곽재용의 트레이드 마크인) 비오는 거리로 뛰어나가 춤을 추고, 중세 서양의 공주에서부터 경찰 제복에 이르는 다양한 옷들을 번갈아 갈아입으며, 신파물 주인공에서부터 터프한 미치광이 경관까지 온갖 역들을 잠깐씩 연기한다. 물론 서비스로 지금 이 배우가 모델로 일하는 수많은 상품들의 간접 광고를 해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영화가 끝날 무렵엔 지금까지 영화와 매스미디어가 활용해왔던 이 사람의 이미지 전부를 속성으로 따라잡았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이 뻔뻔스러운 전지현 팔아먹기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의무이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처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아시아권 내에서 동시배급이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카리스마와 인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사람들이 전지현을 보고 싶어한다고? 그럼 보여주면 된다. 세상에서 이처럼 당연한 일은 없다.

전지현 팬들을 위한 서비스 클립

그렇다고 해서 그 영화가 나쁜 작품이 되라는 법도 없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전지현 페티시스트들을 위한 2시간짜리 서비스라면 <크리스티나 여왕>은 그레타 가르보 페티시스트들을 위한 2시간짜리 서비스다. 그리고 <크리스티나 여왕>은 좋은 가르보팬용 서비스 클립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이처럼 어정쩡한 작품으로 완성된 것은 과연 전지현을 팔아먹으려는 영화의 뻔뻔스러운 상업적 의도 때문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인가?

곽재용의 <엽기적인 그녀>는 국내에서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된 적이 거의 없었다. 영화는 분명 흥행 성공작이었고, 이후 국내 영화계에 인터넷 소설 각색 붐을 불러왔으며, 전지현도 이 영화로 흥행 스타로 떠올랐지만, 영화 자체는 그렇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은 편은 아니었다. 이 영화를 진지하게 본 건 오히려 해외의 관객과 비평가들이었다. 곽재용은 종종 이에 대해 공공연하게 불평하기도 했다. 국내보다 해외 관객이나 비평가들이 자신의 의도를 좀더 정확하게 꿰뚫는다고 말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대충 무시한 ‘진흙 속의 진주’를 다른 나라에서 재발견했다고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다. <엽기적인 그녀>가 해외에서 평가를 더 얻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국 관객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 코미디영화의 관습에 해외 관객이 익숙지 않아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파괴적이고 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코미디라도 어떻게든 무조건 신파 멜로로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처음 접한 관객은 그 어색한 결합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리고 해외 관객과 비평가들이 <엽기적인 그녀>의 가장 흥미로운 점으로 지적되었던 부분도 이 아귀가 맞지 않는 장르의 충돌이었던 것이다. 안전한 관습이 국경과 언어를 넘자 어느 순간 영화의 개성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변용 속에서 곽재용의 의도는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걸까? 그는 그냥 관습을 따른 것인가, 아니면 그 진부한 관습 속에서 의식적으로 색다른 일탈의 방향을 찾아낸 것인가?

작가 선언:장르의 혼합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단순한 전지현 팔아먹기 영화가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더 높았을 것이다. 의식적인 대자본 상업영화라면 처음부터 어느 정도 안전성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곽재용이 만들려 했던 영화는 처음부터 그 안전한 완성도를 포기한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을 예술적으로 뛰어넘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곽재용의 이전 히트작 두편들은 모두 참 야심이 작다. <엽기적인 그녀>는 통신망 베스트셀러의 소박한 각색물이고 <클래식>도 70년대를 무대로 한 순진한 멜로드라마 이상을 의도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는 분명히 상당한 수준의 예술적 의도와 야심이 숨어 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작가 선언이다. 특히 이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감독 자신의 소급 해석과도 같다. 어떻게 보면 곽재용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통해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성공이 자신의 완벽한 예술적 통제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꼭 <엽기적인 그녀>의 재탕 같은 영화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곽재용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완성도 면에서 앞의 두편을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굳게 믿을 수 있었던 것도 그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이전에 갔던 길을 다시 한번 걸으면서 전에는 무시됐던 것들을 드러내고 과장한다.

곽재용의 선언 중 가장 노골적인 것은 장르의 혼합이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는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경찰물, 유령 이야기가 멋대로 뒤섞여 있다. 여기서 곽재용이 이들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영화적 흐름에 통합시키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초점이 어긋난 것이다. 이 어긋나는 장르들의 어색한 결합은 철저하게 의도적이기 때문이다.

곽재용의 의도는 주인공의 자살기도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인을 잃고 투신한 주인공이 중간에 뜬 풍선에 걸려 목숨을 부지하는 장면은 절대로 상식수준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감상 대상은 바로 그 말도 안 되고 억지스러운 우연의 일치 자체인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식 사도마조히즘 코미디의 희생자처럼 보였던 남자 주인공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간에 폼을 잡으며 ‘나는 바람이 되고 싶어!’를 외쳐대고, 코믹한 파시스트 경찰이었던 주인공이 갑자기 홍콩누아르의 액션 주인공처럼 심각하게 총질을 해대는 말도 안 되는 장면들 모두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의도적인 설정인 것이다. 따라서 원칙상 이 설정 자체가 영화의 작품성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처음부터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의도한 영화가 아니다. 감독의 의도대로라면 관객은 그 거칠고 조악하고 어색한 느낌이 주는 쾌감 자체를 즐겨야 한다. 물론 중간에 삽입되는 전지현 CF들 역시 그런 어색한 쾌감의 일부이다.

작가적 통제에 실패한 곽재용

문제는 이런 어색한 결합이 과연 관객의 감정을 통제한다는 감독의 의도에 얼마나 부합했느냐이다. <엽기적인 그녀>를 즐겁게 본 관객은 영화에 매우 단순한 반응을 보였다. 전지현과 차태현이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을 벌이면 웃었고 영화가 갑작스럽게 멜로드라마 흉내를 내면 조금 기가 막히다가도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물론 극장 안에서 지겨워 죽는 줄 알았던 나같은 관객도 있었지만 이 경우는 해당이 안 된다). 두 장르의 어색한 결합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적어도 그 구조는 생각 외로 단순했다. <엽기적인 그녀>는 어려운 작품이 아니었다. 이 영화를 ‘이해 못해서’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복잡하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던지고 받을 공이 코미디와 멜로 두개뿐이었다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는 공들이 코미디, 멜로, 유령 이야기, 경찰물 등등으로 갑자기 수가 늘어났다. 곽재용의 야심이 컸던 걸 생각해보면 당연한데, 만약 이것이 성공했다면 겉으로는 아무리 값싸 보여도 굉장한 예술적 성취였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곽재용에게는 그런 까다로운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는 엄청난 신경과 계산 능력이 없다. 여러분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옹호할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무리 이 영화를 옹호하고 싶어도 이 작품이 의도만큼 관객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의도만 따진다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엽기적인 그녀>보다 슬픈 멜로드라마여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카메오 출연은 과연 영화가 의도한 정서적 정점을 살리고 있는가? 바람개비가 뱅뱅 도는 방 안에서 전지현이 죽은 남자친구를 찾아 울부짖을 때 과연 여러분은 충분히 슬프던가? 좋다, 백배 양보해서 이 모든 것들이 더 은밀하고 복잡한 코미디의 일부라고 치자. 그렇다면 과연 그 코미디가 충분히 웃기거나 그에 준하는 다른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던가?

지금까지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곽재용의 다른 영화들과 같은 길을 밟고 있다. 초반 흥행성적은 좋은 편이고 해외에서 흥행 성과도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국내의 비평적 성과는 여전히 그렇게까지 좋은 편이 아니다. 심지어 그렇게 넘고 싶어했던 앞의 두편보다도 나쁘다. 만약 이 영화가 내가 지금까지 말했던 것처럼 곽재용의 작가 선언이었고 평론가들과 관객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면 그는 실패한 셈이다.

슬슬 자기 점검이 필요할 때이다. <엽기적인 그녀>는 곽재용의 영화인가? 물론이다. 그 영화의 일등 공신은 통신망 소설 원작과 배우들이지만 그 영화가 곽재용의 개성이 담뿍 담긴 곽재용 영화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연 <엽기적인 그녀>의 대성공에서 곽재용의 역할은 얼마나 되었는지, 지금 곽재용이 자신의 의도라고 믿는 것이 영화 촬영 당시에도 그의 의도였는지 묻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보고 난 뒤로는 그의 영향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엽기적인 그녀>는 그냥 우연의 산물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적당히 인기를 끌 만한 원작과 운좋게 떨어진 전지현이라는 스타의 적절한 개입이 만들어낸 운좋은 우연의 일치. 여기에 뭔가 더 거창한 것을 더해 그럴싸한 예술 작품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가장 노골적인 문제점은 한류 스타 전지현의 에고가 아니라 감독 곽재용의 에고인지도 모른다.

듀나 djuna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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