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bon Story 1994년
감독 빔 벤더스 출연 루디거 보글러
EBS 6월19일(토) 밤 11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입소문을 타는 영화가 있다. 극장가에 공개된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먼저 접한 사람들이 추천하는 영화다. <리스본 스토리> 역시 비슷한 예가 아닌가 싶다. 시네마테크 등에서 소규모로 상영된 적 있는 이 영화는 빔 벤더스의 숨은 수작이자 영화음악이 듣기 좋은 탓에 영화광들이 아끼는 영화로 소문났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쿠바 음악에 눈을 돌린 적 있는 빔 벤더스는, 1994년작인 <리스본 스토리>에선 포르투갈의 민속음악에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리스본 스토리>는 길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 프리드리히 먼로는 리스본을 흑백 무성영화에 담으려고 하지만 한계에 부딪히자 사운드담당인 필립 빈터스에게 편지로 도움을 요청한다. 한참 뒤에 엽서를 발견한 필립은 자동차로 독일에서 포르투갈까지 고생을 해서 그가 사는 곳을 찾는다. 그러나 프리드리히가 찍다만 필름만 있고 그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조수였다는 아이들,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이들 모두 어제까지 만났다고만 말한다. 리스본에, 가수 테레사에게 매료된 필립은 영화에 맞는 음향효과들을 녹음하러 다니며 프리드리히의 영화에 소리를 입혀나간다.
<리스본 스토리>는 전적으로 마드리드쉬(Madredeus)의 영화다. 포르투갈의 파두(Fado) 음악에 고전음악을 결합한 그룹 마드리드쉬는 영화 내내 신비로운 곡들을 연주한다. 빔 벤더스가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것이 마드리드쉬의 음악을 듣고서였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이니 <리스본 스토리>는 당연하게도 그들 음악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리스본이 자신의 오래된 꿈에서 깨어날 때 나는 오직 나만의 상념을 담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라는 노랫말 역시 영화장면들에 세밀하게 부합하고 있다. 영화는 또한 리스본이라는, 일찍이 항구도시로 알려져왔으며 문화적이고 역사적 유적을 자랑하는 도시의 지도를 스크린으로 옮긴다. 필립은 리스본을 담은 흑백영상에 어울리는 소리들을 하나씩 찾아다니고 거리를 서성인다. 동네 아낙네가 빨래하는 것에서 새들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소리들은 촬영된 필름에 소리의 날개를 달아준다. 영상과 소리라는 화두를 쥐고 있는 <리스본 스토리>는 다시 말해 영화의 역사, 그리고 영화가 할 수 있는 ‘기억’의 기능을 다시금 질문하는 작품인 것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연출자. <파리, 텍사스>(1984)와 <베를린 천사의 시>(1987)뿐 아니라 <밀리언 달러 호텔>(2000) 등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의 과거를 돌이키는 탐구, 영화음악에 관한 남다른 관심으로 필모그래피를 이어왔다. 최근 들어 내러티브영화보다는 영화 사운드, 음악으로 특징지워지는 소품에 주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빔 벤더스 감독이 영화광을 매료시키는 작품을 꾸준하게 만들어왔음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리스본 스토리> 역시 조용한 입소문대로, 영화를 챙겨보는 이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만족감을 안겨줄 것 같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