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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돈 벌어오니, 아이고 좋아, 아즈마 가즈히로의 <알바고양이 유키뽕>

길고 깊은 경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대공황 시대 미국인들은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터무니없는 영웅들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했지만, 지금 동아시아인들은 <신의 아들>이나 <멋진 남자 김태랑>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일조차 가당찮다고 여긴다. 내 신세 그저 이대로지. 뭘 더 나아지길 바라나? 차라리 처절하게 실업자와 백수 신세를 토로하는 자학 개그가 속편한 듯이 보인다. <행복한 백수> <오이카와 취업 일지> <룸펜 스타> <곰씨와 오리군>…. 마치 새로운 장르라도 만들어낼 기세로 ‘불경기 만화’ 혹은 ‘백수 만화’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게으르고 의지박약인 백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가 아닐까? 주인은 방구석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려도 똑똑한 고양이 한 마리가 부와 명예에 미모의 부인까지 얻어다준다. 각종 아르바이트 업무로 작업모 갈아 쓰기 바쁜 <알바 고양이 유키뽕>(북박스 펴냄)은 아마도 <장화 신은 고양이>의 후손으로 보이는데, 주인을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났다.

유키뽕의 주인인 아케미는 정확한 직업도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이른바 프리터(free+arbeiter) 중에서도 꽤나 질 낮은 족속이다. 약간의 돈이라도 생길라치면 술값으로 날려버리고,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며칠씩 외박하는 건 예사이고, 남자와 잔다고 고양이 유키뽕을 노숙자 신세로 만들기도 한다. 주인이 하는 짓은 정말 대책없지만, 아니 그 무책임함으로 인해 더욱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듯, 유키뽕은 이삿짐 나르기에서부터 항해 측량 보조와 과외 교사에 이르기까지 아르바이트 전선의 모든 위치로 달려간다.

갖가지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키뽕과 아케미는 끈끈한 애정으로 엮여져 있는데, 유키뽕의 후덕함은 아르바이트 업계 전체로 퍼져나간다. 자신은 비록 고양이라는 신체적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다채로운 업무의 초보자로 일해 온 만큼 다른 초보 아르바이트생들을 격려하고 일을 도와주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하다. 걸쭉하고 질감 좋은 펜 선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여타의 개그 만화와 질적인 차이를 보여주는데, 유키뽕이 지닌 의외의 사회성에도 탄복하게 된다. 한국에서 돈 벌러 온 권투 선수를 통해 외국인 거주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제주도에 불시착해서 만난 노인을 통해 일본의 불법 한국 점령을 알려주기도 한다. 독자들이 직접 지어 보내는 ‘고양이 하이쿠’도 꽤나 즐거운 코너다. ‘꼬리를 밟았더니 오우 마이 캣’, ‘주인님 미행하니 충격적 추태’, ‘발바닥에 꿀을 찍어 덥석 물었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