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뜨는 여자>를 본 사람은 감독의 이름보다 이자벨 위페르의 눈동자를 더 기억할 거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위자벨 위페르와 영화라는 매체가 이후 반복해서 풀어나간 성과 계급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미용실 보조로 일하는 18살 소녀는 문학도 청년과 만나면서 생의 나락과 마주하게 된다. 모퉁이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그녀에게 그와 친구들이 벌이는 토론의 주제는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것 천지이며, 그의 가족과의 만남 또한 자본주의 내부에 존재하는 계급을 확인해줄 뿐이다. 정신요양원에 갇힌 채 관객을 응시하는 여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보여질 때, <레이스 뜨는 여자>는 우리의 허위를 묻고 잘못된 최선의 의도를 질타한다. 보통 뜨개질은 남을 위한 행위이며, 뜨개질하는 사람의 존재는 쉬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를 1차적 관계로 이끌 동안, 우리의 헛된 짓거리는 2차적 관계를 여전히 부수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스 뜨는 여자>가 관계의 단절을 두고 애통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다면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는 그에 대한 답변이라 하겠다. 한가한 공원에서의 오후, 1년 전에 스쳐지나갔던 여자와 다시 만난 남자는 그녀로부터 칼세례를 받는다. 그건 꿈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죽은 것일까? 우린 흥미롭게도 유령이 등장하는(<아웃 원>의 유령 말고 진짜 유령 말이다) 자크 리베트의 영화를 만나게 되는데, 놀라운 건 시간의 연속성을 탐구하던 그가 시간의 궤도로부터 이탈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하는 판타지다. 시간에서 벗어난 유령 마리가 ‘어떤 시계라도 고칠 수 있냐’고 묻자, 시계 수리공 줄리앙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유령에게 자신의 답을 증명하려는 남자의 노력은 관계와 애정의 복구를 바라는 리베트의 간절한 기도와 같다. 결국 유령도 말하지 않던가! ‘나에게 조금의 시간을 줘봐요’라고. 바뀌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고 나 그리고 우리다.
두 영화의 DVD는 같은 날 출시되었는데, 본편은 물론 부록도 준수하다. 다만 영어 더빙이 제공되는 <레이스 뜨는 여자>에 비해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엔 출시 전 알려진 것과 달리 영어자막이 없어 당혹스럽다.
이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