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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평화의 그날까지, 오늘도 전학이다, <불꽃 전학생>

태어나서 한번이라도 전학이라는 걸 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심장이 요동치는 경험인지 잘 알 것이다. 낯선 학교에서 텃세를 부리는 아이들, 말투 하나로 꼬투리를 잡혀 얻게 되는 별명, 전혀 다른 교과서를 새로 배워야 하는 괴로움…. 그러나 뜻밖의 기회를 잡아 이전 학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늘부터 우리는>에서부터 <멋지다 마사루>까지, 전학은 만화 속에서 무궁무진한 소재를 만들어왔다.

타키지와 노보루는, 말하자면 전학 전문 학생이다. 타키지와의 아버지는 비밀 잠입 교사로, 학생들을 지나치게 강압하는 학교를 찾아가 그 음모를 분쇄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타키지와는 이러한 아버지의 정체도 모른 채 전학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전학 가는 학교들은 괴팍한 열혈 모드로 무장한 말도 안 되는 학교들로, 머리띠를 맨 주번이 지각생을 처단하기 위해 목숨 걸고 교문을 지키고, 급우들은 학급을 사수하기 위해 필살기가 난무하는 체육 대회를 벌인다. 타키지와의 능력 또한 만만찮아 아버지가 학교의 음모를 분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고, 덕분에 가까스로 정을 붙였다 싶은 학교를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수밖에 없다.

대충의 분위기가 느껴지겠지만, 최근 와이드판 6권으로 완결되어 나온 <불꽃 전학생>(대원씨아이 펴냄)은 <울어라 펜>으로 잘 알려진 복고풍 열혈 개그의 대명사 시마모토 가즈히코의 대표작이다. 정통의 열혈 만화란 육체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재로 만들어버리는 데서 감동을 만들어내는 장르이지만, 열혈 개그란 그 재에 밥을 비벼먹으면서 킬킬대는 장르다.

이 만화는 열혈의 진지함을 극단으로 몰고 가면 그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이 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열혈의 규칙에 대한 맹신에 가까운 복종이 깔려 있다. 배구 경기에서 상대방 에이스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아 녹다운된 선수들, 그러나 숫자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 누워 있다가 세트가 바뀌면 몇분에 걸쳐 반대편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스포츠는 규칙이니까. 굉장한 필살기를 수련했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 실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모든 필살기는 사용 전에 이름을 외쳐야 하는데, 그 이름을 외치다보면 상대가 먼저 공격해버리니까.

열혈의 바다는 넓고도 깊다. 전학생 타키지와의 고난 역시 강도를 더해간다. 새로운 학교는 도를 더해가고 대륙처럼 떠다니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열혈이 그렇듯, 대마왕과의 최후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 교육계를 뒤엎어버리려는 악의 비밀결사 그림자 교육위원회와의 마지막 대결까지, 오늘도 전학이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