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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무삭제, 4시간도 즐거워, <누드모델>
심은하 2004-04-30

<누드모델> La Belle Noiseuse

1991년

감독 자크 리베트

상영시간 229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DD 2.0(모노) 프랑스어

자막 한글, 영어

출시사 알토미디어

<누드모델>의 줄거리는 ‘노화가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다’는 딱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자크 리베트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에서 기본 줄거리와 몇몇 이름을 따왔을 뿐, 사실 이야기하기엔 별 관심이 없다(그런 면에서 <누드모델>은 이야기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던, 리베트식 즐거운 이야기하기 <셀린느와 줄리 배를 타다>의 반대편에 서 있다). 또한 <누드모델>을 단순히 예술이 창작되는 과정을 다룬 영화로 볼 수만도 없는 게, 리베트는 주인공들의 관계를 엉성하게 짜놓은데다가 완성된 그림- ‘아름다우나 싸움을 일으키는 여인’(La belle noiseuse)- 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리베트는 ‘한정된 시간의 흐름 위에 놓인 예술가(그리고 그들)의 초상’을 시도한다. <누드모델>은 시간과 그 속에서 형성, 변화, 파괴되는 존재에 관한 영화다.

결국 불려올 이름은 마르틴 하이데거이며, <누드모델>은 그 자체로 ‘존재와 시간’이란 개념과 조응한다. 리베트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유한한 것과 순수하게 보편적인 존재란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영화를 창조하는 시간 속에 몸을 맡기고(우리는 이 영화가 <아웃 원>보다 더 긴 영화가 되지 않은 걸 고마워해야 한다), 매 순간에 위치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어쩌면 <누드모델>은 일종의 즉흥연주나 퍼포먼스와 같아서, 지루한 순간을 지나 주체적인 수용이 동반될 즈음 더 많은 의미가 발견되는 작품이다. 화가의 이상이었을 완성된 그림을 묻어버리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허무감도 그 중 하나다.

윌리엄 뤼브찬스키가 촬영한 리베트의 영화 중 <누드모델>과 <잔다르크>는 지나치게 낮은 채도로 인해 빛과 그림자와 스크린을 통할 때에야 정체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러니 딱딱한 가정용 모니터에서 느껴지는 불만족은, 프랑스 아르테의 마스터를 사용한 한국 DVD와 해외에서 출시된 DVD가 공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그에 반해 자잘한 소리와 (세번 나오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신경을 자극하는 맛이 그만인데, 선입견과 달리 이 영화의 사운드를 무심코 넘기면 많이 아쉬울 터다. 부록 중에 클로드 샤브롤과 장 마리 스트라웁의 이름이 발견되는 단편 <양치기 전법>의 가치가 크며, 그외에 인터뷰, 정성일의 작품해설 등이 들어 있다.이용철

이주의 선택은 <누드모델>이다. 이 영화의 판본엔 이야기가 많다. 자크 리베트가 편집에서 제외된 필름으로 만든 2시간짜리 판본 <디베르티멘토>는 상당히 다른 영화였다. 더 재미있는 건 한국에 수입되면서 94분짜리 영화로 탈바꿈한 판본이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4시간짜리 완전판의 DVD가 출시됐다(유럽 마스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DVD 시간은 229분이다). 후회없는 선택이다.

고흐와 관련된 TV프로그램을 보았다. 생전에는 고흐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했던 그의 그림들이 사후에 상품화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그림과는 달리 영화에선 예술성과 상품성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러브 액츄얼리>와 <누드모델>이 동시에 시장에 나왔다면 전자가 더 비싼 가격에 팔릴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나에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주엔 나와 또 한 사람을 위하여 두 영화를 동시에 선택해본다. DVD로는 보지 못한 <말죽거리 잔혹사>나 <그녀를 믿지 마세요>도 어떨지 궁금하다. 주말에 출시되는 <피터팬>은 화질이 그다지 뛰어나진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 보기에 좋다.

최고의 로맨틱코미디영화라는 <러브 액츄얼리>. 극장 개봉 때 보고 싶었던 영화지만, 커플이 아니면 보지 않는 것이 이로울 거란 주위 사람들의 경고(?)로 결국 넘어갔다. DVD 타이틀 역시 똑같은 이유로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워낙 주변 사람들의 진지한 충고 덕에 훗날 커플이 되면 그때야 시도를 해야겠다. <데스페라도>를 보고 푹 빠졌던 라틴계의 미녀 셀마 헤이엑. 그녀의 불같은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프리다>는 DVD 발매를 기다렸던 작품. 기다림에 보상이라도 하듯 아주 만족스러운 퀄리티를 보여준다. 그래도 이주의 선택은 단연 <말죽거리 잔혹사>. 한국영화 가운데 이 영화처럼 DVD 출시를 애타게 기다린 적은 없었다. 영화도 좋고 타이틀 자체의 완성도 또한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곤 모범적인 예로 들어도 좋을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