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물고기를 낚은 건 봄의 어느 날이었구나. 하늘 저 멀리 비의 꼬리가 여름의 끝을 잘라가는 것도 보았지. 가을은 나무 속에서 자라난 성냥이 잎들을 불태우며 찾아왔다네. 어느덧 그믐밤, 문어 모양의 눈 집에 앉아 있기만 해도 이렇듯 한해의 추억은 우리의 눈앞을 지나가지. 그것은 시가 아니야. 진짜로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이라구.
모든 것이 가능한 메르헨의 세계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대원씨아이 펴냄)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소곤소곤 번져간 소문을 통해 판타지 마니아, 고양이 애호가, 동화세계의 옹호자들이 속속 아타고올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국내에서는 최신 시리즈라 할 수 있는 <고양이의 숲>만이 소개되고 있는데, 사실 아타고올은 벌써 30년 가까이 여러 출판사를 통해 다양한 시리즈를 펼쳐내고 있는 거대한 세계다.
마스무라 히로시는 1973년 <소년점프>를 통해 데뷔, 초기에는 예술만화잡지로 널리 알려진 <가로>에서 활동했다. 그의 그림은 흑백의 펜화라는 일본적인 만화 기법에 어느 정도 기반하고 있지만, 작품 안의 서구 동화적인 세계관은 그로 하여금 주류 만화 바깥에서 자신의 자리를 모색하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그는 1976년 <만화 소년>에 ‘그림자를 자르는 숲의 은빛 하프’로 시작되는 <아타고올 이야기> 시리즈를 발표하는데, 이로부터 <은하철도 999>의 마쓰모토 레이지에 비견될 정도의 장대하고 복잡한 만화세계가 시작된다.
<아타고올 이야기> 서두는 고양이 치비마루를 통해 아타고올로 통하는 길을 안내한다. 평범한 길고양이 치비마루는 밤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골목 어귀의 자동판매기와 벽 사이 10cm 통로로 들어간다. 그리고 스르륵 몸이 커지면서 두발로 직립하며 말까지 하게 된다. 이 환상의 세계는 <보물섬> <피터팬> <눈의 여왕> <셜록 홈즈>와 같은 온갖 동화와 모험 판타지의 복합체와 같은 곳이다. 그 안에서는 놀라운 상상력의 생명체와 기이한 물건들이 끝없이 등장하고, 그 모든 것은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의 기억과 같은 애틋함으로 뒤덮여 있다. 하모니카 부는 뎀뿌라, 바이올린 켜는 가라아게마루 등 장난기 넘치는 이름의 캐릭터들도 쉴새없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말썽꾸러기 히데요시가 모든 사건의 중심. 그 덕분에 한없는 다정함과 착한 상상력으로 설탕범벅이 될 수도 있는 아타고올이 진한 우동 국물이 흐르는 어른들의 모험 동산이 되기도 한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manamana@k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