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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나간 사람들, 그 진지함에 대하여

저들이 탄핵안을 가결시킨 이후, 우리는 참 여러 가지 별별 희한한 구경을 다 하게 된다. <물은 셀프> <병렬연결의 특징> <개죽이의 미소> 등 상황을 한껏 비튼 패러디는 웃음보를 자극한다. 이런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던져주기 위해 창작된 것으로, 성공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말하는 사람은 한껏 진지하거나 엄숙하고 또 나라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낸 흔적이 역력하거나 끝없는 고뇌 끝에 입을 연 것 같은데, 듣는 사람은 웃음을 참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어이없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말을 거침없이 털어놓기도 한다. 원래 그랬던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는데 순식간에 망가져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군사쿠데타로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하자는 어느 교수의 말에 우리는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그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군사쿠데타로 복원이 가능한 것일까? 저런 자가 명문대학에서 수십년간 행정학을 가르쳤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저런 자들이 아무리 선동을 해대도 군이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 군은 하나의 거대한 이익집단이 되었다. 군사쿠데타가 결코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청년장교들은 군 바깥의 선동가들의 장단에 놀아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저들은 군이 나서야 한다고 거품을 물고, 촛불시위의 배후를 파헤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가방끈 짧은 사람은 ‘국모(!)’ 자격이 없다는 막말까지 해댄다. 21세기에 들어와서까지 이런 막말을 세트로 들어야 하는 것이 한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 역사에서 한번은 거쳐야 할 일이며, 사회가 발전해가고 있는 증거이다. 저들은 제2의 박정희가 나와야 한다고 목청을 세우지만, 정말 박정희 때 같았으면 쿠데타 말 꺼내기가 무섭게 서빙고에 끌려가 푸줏간 고깃덩이처럼 매달렸을 것이다. 이런 점만 좋아진 게 아니다. 수구세력들이 탄핵 같은 무리수를 두어 정치적 ‘집단자살’을 감행하고, 이런 막말을 세트로 토해내는 것은 다 수구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급속히 변해가는 데 따른 초조감 때문이다. 공룡이 그랬던 것처럼 수구의 멸종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수구가 멸종하여 표본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꼭 연구해두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가령 촛불시위에 배후가 있다든가 탄핵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편파적인 방송 때문이라든가 하는 발언을 해대는 사람들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이다. 불행하게도 저들은 촛불시위에 배후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김정일의 지령이 없이, 노사모나 열린우리당의 조직적 동원이 없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제시간 제 돈 써가며 광화문에 모인다는 거, 수구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얘기다. 70, 80년대에도 학생운동과 관련하여 수사기관에 잡혀간 사람들이 제일 황당해 한 것은 이미 사실을 다 불었는데 고문이 그치지 않는 경우였다. 돈을 받지도 않고, 승진의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불의에 항거해서 감옥 갈 줄 알면서 유인물을 만든다고 하면 누가 믿겠냐는 것이다.

중세 말, 근세 초기의 유럽을 강타한 마녀사냥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마녀사냥꾼만이 마녀의 존재를 믿었던 것은 아니다. 마녀사냥의 희생자들 역시 마녀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었고, 마녀는 처형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마녀로 몰린 사람들의 다수가 자신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 아니라 진짜 마녀라면서 악마와의 잠자리, 악마예배, 공중비행, 마녀집회 등에 대해 아주 세세한 자백을 했던 것이다. <크루서블>의 에바 게일과 같이 다른 사람을 음해하기 위해 마녀 소동을 꾸며내는 악녀도 있었지만, 마녀사냥 연구자들을 당혹케 만드는 것은 실제 자신을 마녀로 굳게 믿으며 악마와 자신이 한 행위를 자백한 자료들이다. 이렇게 자백하고 죽어간 사람이나 또 이런 사람들을 잡아죽인 사람들이나 사실은 처벌대상이라기보다는 중증 정신병에 걸린 치료대상이다.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였다면, 사실 마녀사냥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쩌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최소한 엑스트라로 참여하는 <엑소시스트>나 <퇴마록>을 찍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거대한 악령은 물러나고 있고, 그 악령에 사로잡혔던 수많은 사람들은 깨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악령으로부터 깨어나는 사람들을 향해 때늦은 주문을 계속 외쳐대는 소수의 정신병자들이 있다. 우리의 깨어남이 저들의 정신병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정신병도 나으려면 환자 자신의 재활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던데….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