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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나가다, 전율과도 같이…
2001-06-07

논란을 안고 5월27일 종영된 KBS2 주말드라마 <푸른안개>

아무것도 몰랐다. 길은 그저 뻗어 있는 것이고, 그 길을 따라서 곧바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조차 않은 채 지금껏 그렇게 왔다. 그러다 그 길에 누군가 뛰어들었다.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잠시 세워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든 것도 아니다. 그저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끔, 다른 길로 비켜갈 수도 없게끔, 길을 막고 뛰어들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 마흔여섯, 그렇게 사랑 하나가 찾아왔다.

우리 안의 성재, 우리 안의 신우

지난 5월27일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푸른안개>(연출 표민수, 극본 이금림)는 이렇게 어떤 불편도, 고민도 없이 살아오던 40대 남자가 어느날 불쑥 뛰어든 20대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일을 담아낸 드라마다. 방영 전부터 ‘20대 여자와 40대 남자의 불륜’이라는 선입견 속에 ‘원조교제’ 같은 비적절한 단어가 자주 언급되기도 했고, 가족시간대인 주말 저녁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난의 글이 쏟아지기도 했으며, 난데없이 드라마 게시판이 시청소감이 아닌 “유부남을 사랑했습니다” 같은 식의 수기들로 빽빽이 채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푸른안개>는 단순히 “천하에 할 짓이 없어, 딸 같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나”식의 용서 못할 불륜이나 “나이, 결혼여부가 상관있나, 두 사람이 사랑하는데”식의 사랑예찬론으로 결론내릴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이 순간에도 우리 중 하나는 아빠의 외도를 알게 된 어린 딸일는지도, 새파랗게 어린 여자에게 남편을 뺏겨버린 마흔둘의 경주(김미숙)일는지도, 무기력하던 삶에 청량제 같은 사랑을 만난 40대의 성재(이경영)일는지도, 사랑의 열병을 앓는 스물셋의 신우(이요원)일는지도, 혹은 주변의 사랑을 자기멋대로 평가하는 방정맞은 관찰자들일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를 버리고 젊은 언니와 오피스텔에 둥지를 틀고 미소짓는 아빠를 평생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적이 없었는지, 내 삶을, 내 가정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남편의 행복을 어떤 식으로든 부수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는지, 겁많은 자신에게 달려든 겁없는 청춘을 감히 거부할 수 있었는지, 사랑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수록 누군가에게 더욱 빠져들게 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그 진정성 따위는 관심없이 사랑에 빠진 이들을 공격하며 구석으로 내몰지 않았는지. 이 물음들에 다 자신할 수 없기에 우리는 이 불륜의 드라마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불륜, 잔인한 시험

<푸른안개>는 단순히 ‘불륜’을 소재로 취해 자극적으로 어필해 보겠다는 안방극장의 닳고 닳은 돌림노래는 아니다. 그보다는 ‘불륜의 딜레마’에 빠진 가련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며, 소유욕이 탄생시킨 결혼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고, 사랑의 유무에 대한 가슴아픈 실험이다. 특히 드라마 전반을 통해 확인되는 ‘불륜의 딜레마’는 보는 내내 우리를 괴롭힌다. 신우가 성재에게 처음 끌렸던 순간은 딸의 전화를 자상하게 받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머리 희끗한 성재가 신우에게 빠져든 것은 싱그러운 젊음과 당당하고 겁없는 삶의 태도였다. 그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 무언가를 ‘원조’받는 것도 아니고, 싱싱한 육체를 탐하지도 않았다. 몇번의 포옹, 한번의 입맞춤, 함께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어깨를 마주하고 길을 걸은 것뿐이다. 두 사람 모두가 사랑에 자유로운 상태라면 상관없겠지만 가정을 가진 성재는, 의도치 않았다 해도,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한다.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주변에서는 ‘불륜’이라 말한다. 성재가 신우에게 이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해보일 방법은 가정을 버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성재가 이혼을 결심한다는 것은 다정한 아빠의 역할 역시 포기함을 뜻한다. 주변의 공격에 신우의 생기로움 역시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가 가장 사랑했던 모습에서 가장 동떨어진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랑을 찾으면 완전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이 결국엔 불완전의 상태에 이르고 마는 ‘불륜의 딜레마’. 이렇게 드라마는 ‘나약한 인간에게 찾아든 잔인한 시험’을 자행하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로 내모는 ‘불륜’의 전제는 ‘결혼’이다. 일부일처제의 결혼이란 제도가 생겨난 이후 수천년 동안 불륜의 씨앗은 우리의 피 어디쯤 돌고 있는 유전자일는지 모르겠다. 경주의 아버지도, 신우의 어머니도, 성재도 피할 수 없었던, 어쩌면 딸인 주희도 빠질지 모르는 ‘슬픈 유혹’은 결혼의 성스런 약속과 책임이라는 다소 무거운 안전띠를 두르고 있어도 늘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으로 사랑이 충만하던 시기의 연인에게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방패막이다. 어차피 완벽한 소유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우리는 한 영혼을 가장 가까이 묶어둘 수 있다고 자위하며 기꺼이 결혼반지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내 몸 구석구석이 규범들과 책임에 휩싸여 조금씩 회색으로 굳어져간다고 느꼈을 때, 오래 전 알았던 그러나 잊고 살았던 아릿한 감각이 손끝부터 전해져 올 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부상당하지 않을 거라 감히 자신할 수 있을까?

사랑, 잃어버린 삶의 보상

성재는 신우와의 사랑을 통해 잃었던 자아를 찾아 어릴 적 꿈이었던 책방 주인이 되고 신우는 그 사랑으로 성숙한 여인이 되어 또다른 불륜의 예비자를 잉태하며, 가볍게 살아오던 민규는 사랑의 무거운 존재감을 느낀다. 그리고 불행히도 경주는 많은 것을 잃는다. 물론 드라마의 결론만을 보자면 모두들 무사한 선에서 안전하게 귀착했다는 오해를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결론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모든 이를 만족시킨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는지 모른다. 하여 표민수 감독과 이금림 작가가 선택한 결론은 어쩌면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판타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결론 대신 정의할 수 없는 삶의 숙제들을, 사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한 삶을 살고 난 뒤에도 못 얻을지 모르는 사유들을 제시한다. 어차피 열정적인 사랑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내 삶을 뒤흔들 극적인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주하며 사는 우리에게 <푸른안개>는 누구에게나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안개’임을 일깨워주는 드라마이다.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사랑하지 않는 것, 그것이 불륜이다”... 표민수 PD 인터뷰

3개월 촬영 동안 더부룩하게 길렀다는 긴머리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다시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표민수 PD는 노희경 작가와 짝패를 이루어 축복받지 못한, 그러나 비난할 수 없었던 사랑을 세심한 영상에 담아냈다. <은실이>의 이금림 작가와 함께한 <푸른안개>에서는 전작보다는 우회적이지만 한층 깊어진 연출을 선보였다.

<거짓말> <슬픈 유혹> <바보같은 사랑>, 이번 <푸른안개>까지 늘 정상적인 사랑보다는 사람들이 ‘불륜’이라고 칭할 만한 사랑을 그렸다.

한회, 한회 많은 질문과 고민을 스스로에게 하며 <푸른안개>를 끝내고 보니 ‘힘든 사랑만 사랑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힘든 사랑에 대한 연민이 많아서 그럴 거다. ‘불륜’(不倫)은 윤리가 아니라는 건데, 인간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것보다 불륜이 아닌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나.

<거짓말>에서 윤여정씨 대사 중에 “이왕 늙을 거면 몸따라 마음도 늙지 마음은 청춘인데 몸만 늙는 게 서글퍼…. 그때 그 나이에 내가 가졌던 꿈들 그 생기발랄했던 모습들, 호기심, 설렘, 작지만 내깐에 아팠던 기억들 왜 그리 또렷한지…” 이런 게 있었다. 왜 사람들이 젊음에 대한 희구를 가지고 있는지, 계절은 겨울이 와도 봄이 온다는 기대가 있는데 사람에겐 한번 지나간 계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슬퍼서 그런 건지,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일부일처제가 잘못된 건지. 이런 의문들을 진지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고 이런 것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이고 중년의 남자이다보니 그런 문제의식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같다. 사회적 통념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알았다.

성재와 경주의 부부관계는 얼핏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문제가 터지고 난 다음에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경우다. 15년 같이 산 부부의 ‘서걱거림’, 존중, 예절이란 허울의 냉정함과 무심함.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변질돼온 관계. 그러나 이런 문제는 신우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인식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작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신우와 성재는 입맞춤 이상의 육체적 접촉이 없다.

육체관계를 가지고 나면 쉽게 허탈감이 올 것 같았다. 이 사랑도 마지막이 아닐 텐데 모두 안정된 자리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을 금방 느끼면 어쩌나. 그저 함께 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저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구나,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결론에 만족하나? 일본영화를 보면 이런 경우 대부분 동반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죽지않고 살아야 한다는건, 물론 현실과의 타협이라고 보는쪽도 있지만, 그만큼의 이유가 있을것같다. 이런 어려운 사랑을 주고, 그것을 극복하게 만든다는건 그 이후 삶의 보상이 있을거란거다.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숙제를 풀기위해 <푸른안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숙제만 더 많이 얻은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번 더 해보고싶다.